목차
1. 들어가며
2. 본글
(1) 삼한과 한군현(낙랑군)에 대한 개념과 논의의 범위 설정
(2) 중국과의 교역 1 - 조공무역
(3) 중국과의 교역 2 - 중국 상인과의 교역
(4) 왜와의 교역
(5) 3세기 대외교역 체계상의 변화 - 원거리 국제교역
(6) 마한의 목지국과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의 대외무역
1) 마한 목지국의 대외무역 (천안 청당동 유적을 중심으로)
2) 영산강 유역 옹관고분사회의 대외무역
3. 마무리 - 상업과 무역을 바탕으로 한 서남해 해상세력으로의 연결
본문내용
3. 마무리 - 상업과 무역을 바탕으로 한 서남해 해상세력으로의 연결
생산력의 발전을 바탕으로 기원을 전후한 시기 이전부터 발달한 삼한의 상업과 무역은, 3세기 후반경에 이르러서는 삼한 각지에서 백제국과 신미국, 사로국을 중심으로 조직된 원거리 국제교역을 위한 전문적인 교역체계가 운용되고 있었다. 한국 고대사의 전개과정에서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은 중요한 역사 발전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삼한 대신 백제, 신라, 가야가 등장하고, 고고학상으로는 원삼국 시대에서 삼한 고분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해당된다. 신라, 백제 국가로의 발전은 3세기 후반 진한, 마한의 이름으로 진 본국과 조직적인 무역관계를 가질 정도의 확대된 정치체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3세기 중반 경부터의 영산강 유역 옹관고분사회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바로 해로 교통상의 요지라는 자연 조건을 이용한 상업과 무역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영암 구림마을에 전해오는 왕인 설화는 왕인이 영암인일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어, 이 설화가 의미하는 바를 서남해 지방의 해양사적 위치와 관련지어 추론해 볼 수 있다. 옹관고분이라는 특유의 고분은 서남해 지방에서 강과 바다를 통로로 하여 정치적 연대망을 형성했던 독자적 해상세력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고고학적 물증으로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역주 중국정사 조선전』1, 1987.
서영수,「고대국가 형성기의 대외관계」,『한국사』 2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 2, 한길사, 1994.
조법종,「삼한사회의 형성과 발전」,『한국사』 2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 2, 한길사, 1994.
권오영,「백제의 성립과 발전」,『한국사』 6 백제, 국사편찬위원회, 1995.
이현혜,「삼한의 정치와 사회」,『한국사』 4 고조선 부여 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이현혜,『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일조각, 1998.
김한규,『한중관계사』1, 아르케, 1999.
이기동,「백제국의 성장과 마한 병합」,『백제사연구』, 일조각, 1996.
함순섭,「천안 청당동유적을 통해 본 마한의 대외교섭」,『마한사 연구』, 충남대학교 출판부, 1998.
윤용구,「『삼국지』 한전 대외관계기사에 대한 일검토」,『마한사 연구』, 충남대학교 출판부, 1998.
최성락,「해남 백포만 일대의 선사유적」,『최영희선생 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탐구당, 1997.
윤명철,「고대 동아지중해의 해양교류와 영산강유역」,『지방사와 지방문화』제3권 1호, 2000.
임영진,「영산강유역 석실봉토분의 성격」,『지방사와 지방문화』 제3권 1호, 2000.
송태갑,「해남반도의 고대사회와 대외관계」,『전남사학』18, 2002.
강봉룡,「서남해역의 해양세력과 해양영웅」,『한국의 해양문화』1 上 : 서남해역, 해양수산부, 2002.
강봉룡,「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의 형성과 전개」,『강좌 한국고대사』10 고대사 연구의 변경, 가락국 사적개발 연구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