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가단과 가집
- 최초 등록일
- 2004.04.02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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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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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단(歌壇)"
면앙정가단( 仰亭歌壇)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
성산가단(星山歌壇)
노가재가단(老齋歌歌壇)
"가집(歌集)"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
가단과 가집의 관계
본문내용
"가단(歌壇)"
가단이란 가객들의 사회 또는 그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객이라고 하는 경우는 보통 조선 후기의 중인(中人)·아전(衙前)층을 중심으로 한 가객집단을 가리킨다. 조선 후기에는 시조창(時調唱)이 크게 발달하면서 중인·서리층 출신의 가객들이 도시의 문학과 풍류를 주도했는데, 가단은 중인 신분으로 한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인 시사(詩社)에 대응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이 일정한 모임을 갖고 함께 활동한 흔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만, 가단이란 이름 아래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는 뚜렷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양상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해동가요(海東歌謠)》의 장복소(張福紹) 서문에 ‘김수장(金壽長)과 김천택(金天澤)이 경정산(敬亭山)으로 상대한 사이인데, 두 사람은 당대의 노래에 통달한 사람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의거해 학자들은 김수장과 김천택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가단을 경정산가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김천택과 김수장은 각각 별도의 가단 활동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김수장은 말년에 서울 화개동에 자기 호를 딴 노가재(老歌齋)란 이름의 정자를 지어놓고, 여러 동료 및 후배 가객들과 함께 활발한 시조 창작과 가창·가집 편찬 활동을 했다. 학자들은 이 모임을 노가재가단이라고 부른다.
참고 자료
김용찬, <18세기의 시조 문학과 예술사적 위상>, 월인 1999
엠파스 백과사전(두산 사이버 대백과) http://www.empas.com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