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6세기 士林의 歷史的 性格
- 최초 등록일
- 2004.03.29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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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6세기 조선왕조 사회는 정통 性理學派로서의 士林派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성의 집권세력인 勳舊戚臣 세력과 대립하면서 여러차례의 희생을 치룬 끝에 마침내 집권적 위치를 차지하고, 그러는 가운데 思想的으로 성리학이 定着의 뿌리를 확고히 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런 추세의 역사적 의의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성리학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해야겠다.
중국 宋나라에서 확립된 성리학은 흔히 中小地主層의 학문으로 말해진다. 즉 이 시기 역사의 새로운 담당자로 浮上한 중소지주 출신의 學者, 官僚들이 唐代까지의 大貴族, 大地主 중심의 사회체제를 비판 지양하는 論據로서 儒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체계를 새롭게 한 것이 性理學이다. 이 학문의 要鍗는 곧 「修己治人」으로서, 公道에 입각한 治人을 위해 聖人, 賢人의 경지를 모범으로 한 「修己」가 학문의 중심과제로 요청되었다. 公道에 입각한 「治人」은 治者의 私利추구 배제를 뜻하고, 이 학문이 특히 이 점을 강조하게 된 것은 唐末 사회적 혼란과 五代의 異民族의 침입에 漢族이 무력했던 것이 大貴族의 자기 중심적인 私利추구 정치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의 公道論도 이 학문 자체가 中世的사상체계로부터 身分制를 부정하지 못했으므로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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