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역사학] 선덕여왕의 즉위배경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4.03.25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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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중국과 일본에서 여(女) 왕이 나타나게 된 배경.
3. 삼국시대 신라에서 여왕이 나타나게된 배경.
4. 한·중·일에서 나타난 여(女) 왕의 등장배경의 비교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중요시되고 있다. 과거에는 남성이 사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무시했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남성과는 또 다른 여성의 능력이 대두되었고 그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비단 현대에서만 높은 여성의 지위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삼국시대의 신라에서도 모든 지위의 최고점이라 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 여성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선덕여왕(632∼647), 진덕여왕(647∼654), 진성여왕(887∼897)』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참 공교롭게도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재위했던 7세기에는 현재의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왕이 재위했던 때이다. 중국의 당나라때는 측천무후(690∼705)가 국호를 주(周)라 하며 스스로 황제라 칭했고 일본에서는 신공왕후를 비롯하여 추고천황(593∼628)까지 모두 여섯 명의 여 황제가 8대에 거쳐 83년 동안 통치했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주요삼국인 한·중·일에서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여(女)왕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본 글에서는 신라의 첫 번째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을 중심으로 비교하여 이 궁금증을 풀어 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김부식. 이재호 옮김. 『삼국사기』. 1997. <솔>
김부식.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상․하. 1996. <을유문화사>
일연. 이민수 옮김. 『삼국유사』. 1994.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