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사] 춘추전국시대의 정치
- 최초 등록일
- 2004.03.24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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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였지만, 중국 역사에 있어 큰 의의를 가진다. 춘추전국시대의 전개를 주도함으로써 그 변혁기의 성격을 강하게 규정한 것은 전쟁의 격화와 그를 계기로 강화된 권력이었다. 이 시대의 변혁기의 본질은 봉건질서의 해체와 군현제적 지배의 성립으로 표현되는 집단의 독자성 상실과 중앙권력에의 예속화의 과정으로 요약 될 수 있다. 약소국의 몰락과 현의 출현, 전통적 국야(國野)의 이중체제 및 그를 바탕으로 하는 씨족적 신분구조의 해체, 공실(公室)의 쇠퇴와 귀족의 투쟁 및 대거 소멸, 사(士)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전국 이후 각국 군주권은 총력전의 양상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체제의 확립과 씨족공동체 해체 이후 누적·방치되어 온 갖가지 사회적 모순의 해결을 위해 다투어 변법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제국으로의 발전단계로만 생각할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어느 시기보다도 발전이 있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1. 춘추시대의 정치
1) 국(國)의 구조와 영역범위
2) 국(國)의 신분질서와 국인(國人, 士人)의 위치
3) 국(國)의 해체와 군현제(郡縣制)의 출현
Ⅱ. 전국시대의 정치사적 의미
1) 전국시대 각국의 변법(變法)
2) 상앙(尙鞅)의 변법(變法)
나오며
본문내용
들어가기
정치면에서 춘추시대는 아직도 주대(周代)의 봉건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비록 주 왕실은 쇠퇴하였으나 낙양(洛陽)을 중심으로 한 동주(東周)체제하에서 지방의 제후들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우고 패권을 다투었다. 각국의 정치는 경(卿) 대부(大夫)등 귀족의 수중에 있었으며 비록 대부의 세력이 강하기는 하였으나 제후(諸侯)를 넘어뜨리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들어서면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주 왕실은 낙양근처만을 차지하는 조그마한 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주나라가 소국으로 축소됨에 따라 지방의 제후국 가운데 강력한 실력을 지닌 경 대부들이 제후국의 지위를 찬탈하는 하극상의 사태가 발생하고 제후국도 강국이 약소국을 병합하는 이른바 약육강식의 살벌한 사태가 되었다. 이때 신흥강국(戰國7雄)은 새로 정벌한 영토에 봉건제 대신 중앙집권적 군현제도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군주의 권력은 크게 강화된 반면에 귀족 세력은 약화되면서 주대의 봉건질서가 가부장적(家父長的) 군신관계(君臣關係)로 변모하였다. 특히 춘추시대 중기 이후에 종래 영역국가 형태로 발전되어 나갔다. 이에 따라 전국시대에는 봉건국가체계가 해체되고 이에 대신하여 왕권이 강화되는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체제로 변천되어 나갔다. 이렇게 춘추전국시대는 정치적으로 난세였지만, 통일제국으로 가는 획기적인 변동기였음을 기억하고 어떻게 전개되어 갔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1. 신채식 저,『동양사 개론』, 삼영사, 1997
2. 서울대학교 동양사학연구실 편,『講座 中國史 Ⅰ』, 지식산업사, 1989
3. 貝塚茂樹; 伊藤道治 공저, 동양학 연구실 옮김. 저,『중국의 역사』Ⅰ, 이론과 실천,1989
4. 윤내현 저,『상주사』, 민음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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