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학분야] 양아록
- 최초 등록일
- 2003.12.16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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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양아록의 가치를 감식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 사항을 통해 정리하시오
2. 양아록 발견의 의의에 대해 약술하시오.
본문내용
1.양아록의 가치를 감식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 사항을 통해 정리하시오
1>저자: 이문건
1494(성종 25)∼1567(명종 22).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발(子發), 호는 묵재(默齋) · 휴수(休馬)이다. 고려 후기의 명현인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으로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李稷)의 5대손이며,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역임한 이윤탁(李允濯)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출생지와 거주지는 미상이다.
일찍이 중형 이충건(李忠楗)과 함께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중종 8년(1513) 맏형인 이홍건(李弘楗)과 함께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안처겸(安處謙)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한동안 낙안(樂安)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 22년(1527)에 사면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에 보임되었다. 이어 중종 28년(1533) 승문원 박사(博士)로 발탁되었고, 이듬해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이 되어 활발한 언론활동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과(武科)의 시관(試官)으로도 참여하였다. 이때 희릉(禧陵)의 광(壙) 안에 악석(惡石)이 있다고 진언하여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중종 34년(1539) 장령에 제수되었으나 이 일이 문제가 되어 곧 체직되었다.
참고 자료
양아록-이문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