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항일운동사] 부산 독립운동사
- 최초 등록일
- 2003.12.15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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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부산독립운동사
□ 부산독립운동 의거
1. 일신여학교 의거(1919. 3. 11)
2. 동래고보 장터의거(1919. 3. 13)
3. 동래 범어사 학생의거(1919. 3. 18∼19)
4. 구포장터 의거(1919. 3. 29)
5. 기장읍 의거(1919. 4. 5)
6. 일광 의거(1919. 4. 5)
7. 좌천시장 의거(1919. 4. 8)
8. 명호시장 의거(1919. 4. 10)
9. 가덕진 의거(1919. 4. 11)
10. 부산 항일학생운동의 시발점이 된 공설운동장
11. 부산 3.1운동 기념탑
12. 백산거리
본문내용
□ 부산독립운동사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부산항은 근대 개항이래 일제의 조선침략을 위한 발판이었으며, 일찍부터 많은 일인들이 거주해왔다. 이로 인해 부산 항내의 도심지역은 모두 일본인들의 손아귀로 넘어갔으며 조선인은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났다.
또한 일본 상인들이 관세 없이 기계제품과 일상 생활품을 다량으로 유입하면서 부산의 수공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아 해체되었고, 가중되는 수탈로 부산인의 생활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횡포와 불법적 행위는 부산인의 저항심과 항일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쌓이고 쌓인 일제에 대한 적개심은 1916년 9월 13일 부산진의 전차 교통사고를 계기로 순식간에 수천 명의 항민들을 봉기하게 만들었다.(부산진 항민(港民)봉기)
이 봉기로 항민들은 철도를 차단하는 항일시위를 일으켰고, 이후 더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부산독립운동 의거
1. 일신여학교 의거(1919. 3. 11)
3월 2, 3일경 독립선언서가 비밀리에 서울에서 부산의 학생대표단에게 전해져 일신여학생들은 의거를 준비하였다. 3월 11일 오후 9시경 고등과 김응수, 송명진, 김반수 등 11명과 주경애, 박시연 고사는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천동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