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이해] 근기학파의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03.12.09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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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상계의 변화
18세기의 사회개혁론 : 성호학파·북학파의 사회개혁론
** 성호학파(星湖學派)의 실학사상
** 북학파의 실학사상
조선후기의 역사인식
맺음말
본문내용
주자학은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또 하나의 기둥은 과거제도였다. 두 개의 기둥인 과거제도와 주자학 양자는 서로 상호 보완하는 관계에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는 초시(初試)의 경우 지방수령의 조흘강(照訖講)을 거쳐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응시자가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 중에서 임의로 지적된 부분을 암송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배송을 통하여 시험받는 제도였다. 따라서 사서의 암송없이는 과거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주자학의 기본경전인 사서만 암송하면 오륜의 질서가 철두철미하게 체화되는 터이므로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이념으로서는 안성맞춤의 사상체계요, 그러한 사상주입을 제도적 장치로서 한층 강화시킨 것이 과거제도인 셈이다.
그러나 조선왕조를 지탱하던 주자학도 그것만으로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변화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주자학적인 이념의 껍질을 벗고 그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사상체계가 실학사상이다. 그것은 17세기 이래의 사회격변과 무관하지 않으며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체계였다. 이 실학사상을 배태시킨 것은 당시의 사회적 모순의 격화이지만 이 실학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서양 과학기술의 수입과 청조(淸朝) 고증학(考證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증불신(無證不信) 불편주일가(不偏主一家)가 청조 고증학의 기본골격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