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해방정국과 단정수립
- 최초 등록일
- 2003.12.03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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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해방 전의 국제적 상황
2. 조국해방과 민족재건의 노력
1)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
2)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
3) 미군정의 진주와 인공의 운명
3. 신탁통치 문제
1) 모스크바 3상회의
2) 1차 미소공동위원회
3) 좌우합작의 노력
4. 9월 투쟁과 10월 인민항쟁
1) 9월 총파업
2) 10월 인민항쟁(1946년 10월 1일 ~12월 중순)
5. 단선단정 수립
1) 몽양 여운형
2) 2·7 구국투쟁과 단선저지 운동
3) 4·3항쟁(1948년 4월 3일)
4) 남북협상
5)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
<참고문헌>
본문내용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으며 팽창하던 일본 제국주의도 1941년 태평양전쟁과 진주만에서의 패퇴로 인해 패망의 길로 치닫게 된다. 연이은 연합국의 공격으로 일본은 곳곳에서 패퇴하게 된다. 결국 사이판 섬이 함락 당하고 미군이 비행장을 만들어 본토를 공격하게 되면서 일본은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의 천황제 유지라는 유조건 항복을 하기 위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으려는 노력을 하게된다. 당시 미국은 만주에 있는 100만의 관동군에 항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희생을 최소화하고 전략적인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끝까지 기다리다 미·영과 함께 한 얄타회담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고 3개월 이내에 극동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하게된다. 결국 소련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3일 후인 8월 9일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게된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사실상 패전이 확정된거나 다름없는 일본 군대에 대해 소련은 파죽지세로 남하하게 된다. 8월 14일에는 청진, 나남에 상륙하게 되고 16일에는 원산에서 상륙작전을 펼치게 된다. 계속 그대로 둔다면 소련이 한반도를 장악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당시 오키나와에 군대가 분산되었던 미국은 이러한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