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 조준
- 최초 등록일
- 2003.11.22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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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조준(趙浚)
조준의 전제개혁안
본문내용
조준(趙浚)
충목왕2년∼태종5년(1346∼1405). 향년 60세.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 평양(平壤). 자 명중(明仲). 호 우재(齋)·송당(松堂). 시호 문충(文忠). 평양 출생. 우왕 즉위년(1374) 문과에 급제한 뒤 좌우위호군 겸 통례문부사(左右衛護軍兼通禮門副使)가 되고, 강릉도안렴사(江陵道按廉使)·지제교(知製敎) 등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올랐다. 1382년 최영(崔瑩) 휘하에서 체찰사(體察使)로 왜구를 토벌하고, 그 뒤 도검찰사(都檢察使)로 있을 때 왜구를 토평해 선위좌명공신(宣威佐命功臣)에 책록되고 은퇴하였다. 1388년 허금(許錦) 등과 우왕의 폐위를 모의하고 이성계(李成桂)의 일파로 밀직사지사사 겸 대사헌(密直司知司事兼大司憲)에 올랐다. 이성계와 전제개혁(田制改革)의 필요성을 협의, 상소하였고, 문하평리(門下評理)로서 조선군충의군(朝鮮郡忠義君)에 봉해진 뒤 전제개혁을 반대하는 조민수(曺敏修)를 탄핵, 유배케 한 뒤 공양왕 2년(1390) 문하부지사 겸 대사헌(門下府知事兼大司憲)이 되었다. 그 해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개국의 경제적인 기반을 닦고, 1392년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1등으로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진 뒤, 오도도통사(五道都統使)로 병권을 장악하고, 이방원(李芳遠:太宗)을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묵살당하자 사직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