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연혁
- 최초 등록일
- 2003.11.20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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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경림의 연혁
목계장터
♣ 핵심 사항 정리
♣ 감상
♣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시어의 이미지
※시를 쓰게된 배경
본문내용
※시를 쓰게된 배경
목계는 내가 나서 자란 고장에서 이십여 리 떨어져 있는 강마을이 다. 지금은 우체국과 교회가 있고, 수석가게와 매운탕집이 여럿 있는 남한강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강마을에 지나지 않지만, 옛 날에는 이곳이 남한강 수운의 중심으로, 여기에서 큰 갯벌장이 섰다. 갯벌장이란 닷새에 한번씩 서는 정기장이 아니라 배가 들어오면 서는 부정기장이다. 서울에서 소금배나 새우첫배, 그밖의 상고배가 올 라와 이 포구에서 짐을 풀면 충주와 제천, 원주, 영월, 문경 등지에서 쌀이며 콩, 담배 등 내륙지방의 산물들이 달구지나 소에 실려와 바꿈 질을 하던 것이 큰 장이 되자, 관에서도 난장을 허용, 도가(都家)를 통 해 물건을 사고 팔게 했으며, 말감고를 두어 장을 관리하게 했던 것이 다. 갯벌장은 하루만 서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배에 실려온 물건, 달 구지에 실려온 물건이 다 팔려야만 파장이 왔으니, 장이 닷새씩 열흘 씩 끄는 것이 예사였다. 자연 사방에서 장사꾼들의 주머니를 노려 논 다니들이 모여들고 흥청대기도 하곤 남사당패들이 모여들어 놀이판을 벌이기도 했다. 또 장이 계속되는 동안 강가 모래밭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는 일도 많았다. 특히 정월에는 수운의 안녕과 상거래의 번영을 비는 당제가 벌어졌는데,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 줄다리기였으니, 이 줄다리기에는 사방 백리 밖에서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