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덕수궁 답사기

등록일 2003.11.17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답사기 입니다.

목차

- 사전조사
- 덕수궁 답사기

본문내용

덕수궁은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6만 1500㎡. 덕수궁이란 궁명(宮名)은 조선시대 초부터 있었던 이름으로, 양위한 태조의 소어궁(所御宮)을 정종이 개성에 건립하여 덕수궁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태종이 서울로 재환도하여 지금의 창경궁부근에 태조의 궁을 세웠을 때도 역시 덕수궁이라 하였다. 현재의 덕수궁은 본래 세조의 큰아들인 도원군의 큰아들, 즉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다. 도원군은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8세에 죽었기 때문에 세자빈 한씨가 출궁하게 되자 나라에서 이 집을 지어주고 두 아들과 함께 살게 하였다. 둘째아들인 자을산군이 왕(成宗)으로 등극하면서 그의 어머니인 한씨도 입궐하게 되어 월산대군만이 거처하게 되었다. 월산대군이 사망한 후 104년이 지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의주로 난을 피하였던 선조가 1593년 10월 한성으로 돌아와 보니 한성 내에는 거처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황폐되어 이곳에 행궁을 정하고 정릉동행궁이라 하였다. 그러나 월산대군의 집은 경내가 협소하므로 계림군의 집을 행궁에 포함시키고 궁궐 내에 있어야 할 각 관청을 처음에는 궐문 밖에 인접하여 두었다가 점차 목책을 넓혀 세우고 문을 달아 임시 궁성을 형성하여 여러 관청과 위사 등을 모두 궁궐 내에 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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