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신사층

등록일 2003.11.17 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참고문헌과 각주까지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신사층의 형성
1. 학위소지자의 출현
2. 학위소지자의 계층적 고정화
3. 신사층의 성립

Ⅱ. 명대의 국가권력과 신사
1. 사회변화와 신사
2. 신사의 사회■경제적 역할

Ⅳ. 청대의 국가권력과 신사
1. 명■청 교체기의 신사
2. 청조권력과 신사

Ⅴ. 맺음말

본문내용

신사는 국가의 제도적 장치를 매개로 하여 역사에 등장해서 명초부터 사회에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사회적 계층으로 형성된 것은 15세기 중엽부터였다. 신사층을 분석해 보면, 신층(紳層:관직경력자)은 전대 이래의 사회의 지배층으로서 그들 사이에는 강한 동류의식이 존재하였고, 각 향촌에서는 그들을 중심으로 ‘향신공의(鄕紳公議)’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편 사층(士層:未入仕 학위소지자)은 현실적으로는 신층과도, 평민과도 구분되는 ‘중간층’이었다. 사층은 가끔 신층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신층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 당시 상호간에 이해의 상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의 여하에 따라서는 신층 내부에서도, 그리고 사층 내부에서도 공히 분쟁과 갈등은 있었다. 또 반대로 신과 사가 동류의식을 가지고 공동 행동을 펼칠 때도 있었다. 국가권력층이나 평민은 이들을 ‘신사(紳士)’로 일괄하여 칭하였다.
명■청시대에 걸쳐서 중국은 사회■경제적으로 규모가 방대하고 다양해졌다. 지방행정이나 향촌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치행정에 대한 보조수단이 필요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그러한 보조수단으로 신사층을 택하였다. 한편, 평민의 입장에서도 국가권력의 지방통치에서 생기는 공백 부분을 신사의 사회적 지배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명 중기로부터 청말까지의 중국의 사회질서는 거시적으로 보면, 국가권력층과 평민의 공통의 기대하에 신사가 사대부적인 공의식(公議識)에 의해서 국가권력의 보좌역의 역할을 연출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신사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위로는 각 정부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동시에, 향촌사회에 대해서는 사대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지배력을 유지■확대시키고, 사적으로는 개인의 이익도 보호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사리(私利) 추구 행동도 어느 정도 합리화 내지 상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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