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로마제국과 기독교의 전개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3.11.14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초기로마제국의 역사 = 기독교 박해의 역사
3c
4c
밀란칙령과 콘스탄틴
중세 크리스텐돔의 형성과 발전
동, 서방 기독교의 결별

본문내용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 왜냐하면 기독인들의 생활형태는 로마인들의 삶의 형태와는 너무나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경건한 생활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은 향락이 풍습화 된 로마인들과는 조화될 수 없으며 황제숭배를 강요받는 그리스도인은 황제숭배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로마국가의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초기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가 겪은 박해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네로시대의 박해에 있어서도
기독교인들이 처음 받았던 혐의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방화의 혐의였다.
그러다가 후에는 단지 기독교인 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박해의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초기로마제국의 역사 = 기독교 박해의 역사

111년경 버시니아(Bithinia) 의 총독 플리니(Pliny) 와 로마황제 트라잔(Trajan)의 서신(크리스쳔임을 부정하고 로마의 신에게만 경배드리는 자들만 사면해준다는 내용) 에서도 알수있듯이 트라잔은 기독교인이 소환되었을 때에는 엄벌에 처했다. 기독교는 아예 인정되지가 않았다. 이러한 트라잔의 정책은 2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2세기를 넘어서면서 기독교는 점차 강력한 종교조직들을 갖추게 되었고, 전통적인 로마의 종교에 대해 점점 도전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이에 3세기에 이르러 로마제국은 새로운 정책을 수립한다.

3c - 로마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 는 제국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절충적인 종교정책 ‘솔 인빅투스’ (Sol inbictus) :(태양신을 예배하고 섬기면 다른 모든 신은 허용하는) 라는 정책을 폈으나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자 기독교나 유대교의 확장을 막기위해 이 두 종교로 개종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한다. 그러다 149년 제위에 오른 데시우스(Decius) 황제는 제국전역에 걸친 로마의 옛 신 들에 대한 숭배를 의무화 하였다. 그리고 이에 순응하는 자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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