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이해] 400번의 구타

등록일 2003.11.13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영화의 이해수업 중 고전영화 400번의 구타 자작 감상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트뤼포의 삶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야겠다.
어디서든 알 수 있는 얘기여서 지면이 아깝더라도 트뤼포의 삶을 얘기하지 않으면 영화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뤼포는 매우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그의 장편 데뷔작인 "400번의 구타"는 그런 그의 자서전과 같은 영화이다.
어렸을때부터 불우한 탓에 영화에 골몰하게 되었고, 말썽을 일삼고 군까지 탈영한 그는 우연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앙드레 바쟁을 만나면서 그 유명한 프랑스의 영화지 '카이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서 활동을 펼친다.
그는 그 영화지에서 장 뤽 고다르 등과 함께 프랑스의 기존 영화들을 신랄히 비판하며 이른바 작가주의 정책을 편다. 작가주의 정책이란 흔히 감독을 작가와 장인으로 나누는 분류를 말하는데, 자기의 세계관과 영화적 기술을 함께 담고 있는 사람을 작가라 하였고 기술만 세련된 독을 장인이라 불렀다. 이를 통해 기존의 프랑스 영화감독들을 깎아내리고 그때까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던 장 르누와르, 아벨 강스 등을 추켜세웠다. 헐리우드의 영화적 기술과 독특한 기법을 크게 송하면서 헐리우드 감독들을 재해석, 존 포드나 알프레드 히치콕등을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하였다.
그러던 트뤼포는 장 뤽 고다르도 그러했듯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400번의 구타", "피아니스트를 쏴라", "줄 앤 짐" 등 많은 작품을 찍어내면서 그는 자신의 혁명이 단지 세치혀와 펜으로만 끝난 것이 아님을 완벽히 보여주며 프랑스 영화혁명을 이끈다.
이것이 이후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쳐 70년대 영국 뉴웨이브, 독일 뉴저먼시네마, 80년대 브라질 시네마 노보 등 수많은 영화 사조를 낳은 그 유명한 프랑스 누벨바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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