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화담 서경덕의 생애와 사상

등록일 2003.11.12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성리학자에 관한 리포트로 제출했던 내용입니다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생애
1 짧지만 굵은 삶
(1) 출생
(2) 유년시절
2 학습방법
3 포기한 관료의 길
(1) 천거과에 추천
(2) 성균관 자퇴
(3) 후릉참봉직 사양
4 교육자의 길
5 저술
6 생의 마감

Ⅲ 사상
1 기철학
2 정치사상
3 경제사상

본문내용

I. 들어가는 말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성리학자들이 왔다가 갔는데 이 들 중에는 역사에 두드러지게 활동하면서 이름을 세상에 드러낸 이가 있는가 하면 초야에 묻혀 자연을 벗삼아 조용히 지낸 이도 있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전자(前者)에 대해서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자세히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으나 후자(後者)에 대해서는 조금 등한시하고 있다. 지금부터 기술하려고 하는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도 그 후자에 속하며, 그 분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다.
하지만 그가 후대를 살고 간 수많은 선비들의 정신과 사상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한 번쯤 고찰해 봐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Ⅱ. 생애
1. 짧고 굵은 삶
(1) 출생
화담은 조선조 성종 20년 음력 2월 17일, 지금의 개성인 송도(松都)의 화정리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可久이며 화담은 號이다. 어머니는 韓씨 집안 사람이며 공자묘로 자신이 들어가는 태몽을 꾸고서 화담을 낳았다고 한다. 부친은 서호번(徐好蕃)으로 수의부위(修義副尉)라고 하는 하급 무관이었으며 조부 서순경(徐順卿)도 부사용(副司勇)이사라는 무관이었으니 화담은 군인집안에 출생한 셈이다.

(2) 유년시절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했던가! 화담의 어린 시절도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한참 부모님의 귀여움을 받으며 앙탈부릴 나이에도 불구하고 투정한 번 제대로 부리지 않고 양순했으며 예의가 반듯했다. 이런 일화도 전한다. 봄철이라 따뜻한 봄기운을 받고 봄나물이 푸릇푸릇 올라올 때 양반이었지만 가난했던 화담도 여느 집 아이들처럼 바구니를 들고 나물을 깨러 가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참 뒤 돌아올 때 화담의 바구니는 어쩐 일인지 텅 비어 있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러자 부모님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어린 화담의 답변은 “들판에 나가 종달새가 나는 모습을 보며 그 나는 이치를 생각하느라 늦었습니다.”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냥 지나쳐버릴 종달새의 모습을 어린 화담은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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