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

등록일 2003.11.09 한글 (hwp) | 1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서론

-본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
칼빈의 종교개혁운동

-결론
칼빈주의와 루터주의의 비교
종교개혁의 성과

본문내용

종교개혁에 대하여 공정한 객관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종교개혁에 대하여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결과를 논하는 경우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역사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피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신앙을 내면화하고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개신교가 카톨릭교회의 교리나 의식의 번잡함을 피하고 신앙과 그것의 근거로서 성경을 내세우며 원시크리스트교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종교개혁 당시의 카톨릭교회나 성직자의 타락과 세속화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긍정이 가는 견해인 것 같다. 그러나 공정하게 보아 개신교의 신앙이 카톨릭보다 더 참되고 내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이보다 좀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종교개혁이 유럽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와 더불어 자유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종교적 관용을 초래하고 발전시켰다는 견해이다. 개신교의 전체에 공통되는 개인의 신앙을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라든가 칼빈니즘의 계통의 교회조직등을 본다면 종교개혁이 개인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고 민주적인 발전에 어느 정도 공헌한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개인주의나 민주주의의 원천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견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적 관용에 이르러서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루터나 칼빈은 다같이 편협하고 배타적이었으며 카톨릭에 대해서는 물론이지만 같은 개신교내의 다른 교파에 대해서 이를 서로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제 1차적이고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각 교파간의 대립과 배척 그리고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치열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종교적 대립과 분쟁이었다.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단 성취된 후 약 1세기 동안 바로 종교전쟁시대였던 것과, 신 구교를 포함한 각 교파간의 무자비한 박해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거듭하고 지친 끝에 종교적 관용은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그것도 국가의 정치적인 배려에서 취해졌으며 그 원천을 찾는다면 종교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성립과 그 내부에서의 끊임없는 새로운 교파의 발생은 로마교회 중심으로 유지되어 오던 기독교세계의 통일을 파괴하고 기독교 세계의 분열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로마제국의 보편적 이념을 계승하였던 중세카톨릭교회의 보편적 이념도 현실적으로 파괴되고 이념상으로도 사멸하였다. 이제 종교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 통일된 유럽세계라는 이념은 사라지고 국가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교회는 좋든 싫든 점차로 그 그늘에 가리워 지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종교개혁가가 본래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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