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론] 이용악론

등록일 2003.11.08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들어가기
2. 고향상실감의 정서
3. 서정성으로의 시도와 친일성 논란
4. 해방후 리얼리즘
5. 나오기

본문내용

1950년 월북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고 작품 역시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의 뛰어난 문학성과 더불어 날카로운 현실감각은 아직도 문단사에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부족하나마 그의 문학적 행보에 대해 알아보고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까지의 창작시기에 따른 시 세계의 변모상과 작가의식을 알아보겠다.

이용악은 1914년 함경북도 경성읍(鏡城邑)에서 태어났다. 1914년 함북 경성에서 태어난 이용악은 러시아 국경을 넘나들며 소금실이 장사로 생계를 꾸려 가는 가정환경 속에서 뼈저리게 가난을 체험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과정에서 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난이 몸에 밴 그는 일본 상지(上知)대학 유학시절(1934∼1938)에는 품팔이 노동으로 학비를 벌며 최하층의 생활을 전전했다. 그러한 생활을 통해 민족현실의 비극성을 인식하고, 문학을 통해 현실 극복의 의지를 키워갔다. 1935년 처녀작인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습작기를 거친 그는 동경유학 시절 『분수령』(1937)과 『낡은 집』(1938)을 잇따라 발간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확립한다. 귀국 후에는 『인문평론』의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시작활동을 계속했으나, 전시체제에 돌입한 일제의 억압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귀향한 채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 후, 그는 서울로 귀환하여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 <문학실천은 민족 전원의 이익을 위한 무기>라는 자기 명제 아래 민족주의적 지향을 보다 강렬히 구현하고자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분단이 고정화되고 좌익 문인들이 대거 월북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상전향을 거부한 채 남아 있던 그는 6·25 발발로 인해 월북하여, 1960년대까지 당에 예속된 문학활동을 지속하였으나 그 후 행적은 알 길이 없다.

참고 자료

李庸岳 詩全集, 尹永川 編, 창작과비평사, 1988
李庸岳詩硏究, 甘泰俊, 漢陽大學校,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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