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론]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의 3여통합

등록일 2003.11.08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통합논의의 배경
2. 제1차 주민의견조사결과 분리통합안 무산
3. 제2차 주민의견조사결과 3려통합안 무산
4. 제3차 3려시군 통합안 직접투표에서 무산
5. 97년 주민발의 3려통합안 직접투표에서 성취
6. 3려통합에 따른 입법 조치
7. 결론

본문내용

1. 통합논의의 배경

여수지역 행정구역 통합논의는 여수상공회의소가 1983년 1월 여수시와 당시 여천지구 출장소의 통합 당위성에 대한 용역을 하여 책자와 유인물을 제작하여 중앙에 보내 홍보하면서 통합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수시 쪽의 일반적 처사에 격분한 여천지구 출장소 관내 유지들이 일어서서 통합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반대 이유는 여천출장소 관내 주민들에게 사전에 아무런 타협 없이 여수시 상공회의소가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는 데에서 온 반감이였고, 자존심의 대결이였다. 이로 인해 여수와 여천지구 출장소의 통합이 무산되고 말았다.
두 번째는 1994년 정부에서 1995년의 완전한 지방자치단체의 출범을 앞두고 경쟁력을 갖춘 지방자치단체로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문화와 생활권이 같은 도농통합을 준비했다. 1994년 2월 14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를 95년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전에 인구 10만 명 미만의 33개 소도시를 인근군과 통합하는 도농통합의 시군통합을 논의했다. 도농통합의 당위성에 대해 여야 모두 찬성했다.
인구 10만 미만은 소도시와 군의 도농통합 논의는 인구 15만 명 미만의 동일 생활권의 시군통합으로 확대됐으며, 생활구역을 중심한 인구 50만 미만의 시군통합도 정부측에 의해 제시됐다. 도농통합 즉 시군통합의 기준은 지역적 동질성, 동일생활 구역, 지형적 생활권, 통합에 따른 발전 가능성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방자치법을 시에도 읍, 면을 둘 수 있도록 개정하였고, 도농통합의 길이 열리게 되어 94년과 95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36개 곳의 시군통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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