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국 대외관계사

등록일 2003.11.07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중세 일본의 한국인식
1.머리말
2.왜관 출입에 대한 제한
3.왜관 폭동의 원인
4.일본측의 관점
5.맺음말

18세기 조선인의 일본천황에 대한 인식
1. 머리말
2. 천황의 위황
3.천황의 혈통
4.천황복권론--신유한과 조명채
5.맺음말

본문내용

이상에서 조선 후기 조선인의 일본 천황관을 통시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일본천황에 관한 사료의 한계성 때문에 그 대상은 주로 일본에 사행했거나 被拉되었던 사람, 그리고 실학자가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 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조선후기 천황에 대한 인식은 장군에의 알현형식을 놓고 천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였는데, 그는 일본을 주관하는 것은 천황이며 장군은 국왕이 아니고 대신이라는 입장에서 관백에 대한 영외배를 관철시켰다. 그리고 김성일은 천황의 허상을 비웃듯이 천황을 `僞皇`이라고 표기하였다. 이로 볼 때 당시 조선인의 천황에 대한 관심은 천황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는 관백에 대한 외교의례 문제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천황관은 크게 변화를 갖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보아 두 가지 유형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천황의 무력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며, 또 하나는 천황의 복권가능성에 대한 시사이다.
먼저 이경직의 <扶桑錄>에서는 천황과 관백의 이분법적인 인식에 회의를 나타내고 현실적으로 천황의 무력함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황이 존속할 수 있는 이유를 강홍중의 東錄에서는 관백이 천황의 후손이고, 천황이 권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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