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한국 과학사

등록일 2003.11.04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미국과 일본 보건의료의 조선진출 : 제중원과 우두법
2.식민지 시기 과학 기술자의 성장과 제약
3.해방 이후의 과학 기술계
4.KIST와 새로운 과학 기술 연구 기관의 등장

본문내용

1. 미국과 일본 보건의료의 조선진출 : 제중원과 우두법
-근대화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서양의학 도입의 두 신화
현대 한국의 서양의학 도입과 관련해서는 두 개의 신화가 있다. 하나는 '알렌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석영 신화'이다. '알렌 신화'는 후대 한국의 교회사 연구자들이 그의 일기와 자서전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지석영 신화'는 1920년대 말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통치자가 '조선 우두법 도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의 우두법 도입을 결정적으로 도운 사실을 부각시켜 식민지 통치의 정당화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두 '신화'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개인의 역할을 지나치게 부각했다는 점이고, 둘째, 조선정부의 역할을 낮게 평가했다는 점, 셋째, 선교의료와 일본인 군진의료활동에 숨겨져 있는 제국주의적 동기를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중원의 설립-조선정부와 미 선교회 동거에서 경쟁관계로
조선의 미 선교 의료사 알렌은 조선의 간부인 민영익을 사경에서 구해낸다. 이 일은 큰 의미가 있는 일 이었는데 그것은 한방치료가 아닌 서양의술로 민영익을 수술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알렌을 단숨에 조선 정계의 핵심과 연결시켜주었고, 그것은 조선정부의 서양식 병원 설립으로 이어졌다.알렌은 병원설립이 민영익 치료에 관한 개인적 고마움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선정부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은 이보다 거창한 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요인들이 복합되어 있었다. 1885년 4월 개원한 조선정부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은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후엔 종합병원의 모습을 띠었다. 제중원에서는 한의학으로는 고치기 힘든 종류의 병들을 주로 다뤘다. 또한 역병구료에도 관여하여 1885년 대콜레라 유행을 열성정으로 막았다. 그러나 이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제중원은 일반인민의 반서양감정의 대표격이 되어 어린이를 죽여 약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제중원 1886년부터 의료교육을 시작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6명으로 시작하여 1887년 이후는 단지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전락했고, 1899년 무렵에는 1명의 졸업생도 내지 못한 채 수업을 포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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