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일본사 개설]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에 관한 학설 논쟁

등록일 2003.11.03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론
2. 뇌조의 막부창설, 조정과의 관계
3. 사료해석
4. 결론

본문내용

平氏정권의 멸망후 천하를 통일한 원뢰조의 야망을 꺽기 위해 후백하법황(이하 법황)은 뢰조와 의경을 싸우게 하였다. 즉 의경이 제멋대로 조정의 관위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와 뢰조사이에 불화가 싹 텃기 때문에 법황은 이를 최대한 이용하여 평씨가가 멸망한 지 6개월 뒤에 이미 의경에게 뢰조 토벌의 원선을 내렸다. 법황은 후에 뢰조로부터 ‘ 일본제일의 대천 狗’라고 평가될 만큼 권모술수가 였지만 이 원선은 크게 실패하였다. 뢰조는 곧 北條時政을 京都에 파견하여 의경 체포를 명령한 원선을 얻음 과 동시에 각국에 수호지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강청하였다. 이것은 의경 체포를 명목으로 자신의 가인을 수호와 지두에 임명시킬 수 있음을 조저으로 하여금 승인하게 하여 군사경찰권의 전국적 행사와 토지관리권의 합법적 장악의 길을 연 것으로 무가정권 확립의 획기적 사건 이었다. 유력한 부가를 서로 싸우게 하고 그 사이에서 자기 세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법황의 계략은 거꾸러 뢰조의 권세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무가에 대하여 천황과 귀족 세력을 크게 후퇴시켰다.
守護는 國마다 두어 내란기에 이미 그 단서를 이루는 형태가 보인다. 1185년 창설 초기에는 總追浦使라 등의 멸망 후 항구적인 국내경비 기관이 되었으며 1190년대 초기부터는 수호인 이라 불리웠다. 주로 관동 출신의 어가인이 임명되었고 세습되는 경우가 많았다. 수호의임무는 어가인을 지휘하여 치안유지와 경찰권을 행사하고 전시에는 무사를 지휘하는 기능이었다. 지방에 수호가 임명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수호직을 소유한 사람이 해당지방에 거주하는 막부의 직계가신들에게 까지도 상당한 권력을 행사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반 주민에 대해서는 경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일본사 개설
일본의 역사 연민수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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