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쌍공 정이형

등록일 2003.11.01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한국에서의 활동
2) 만주에서의 활동
3)고려혁명당
4)광복 후

본문내용

정이형은 1987년 9월 16일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화하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원흠이나 이명인 이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호는 쌍공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도움으로 김평식 김평식(金平植)은 평북 의주출신으로 만주로 망명하여 대동향햑을 운영하다가 3․1운동 이후 대한독립단․의군부 등 복벽주의 독립군단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

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한학과 더불어 복벽적 항일의식을 전수받고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수용했다. 민족의식을 수용하게 된 것은 친형 정원익 정이형의 친형으로 한말 계몽운동단체인 서북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경술국치 이후에는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제공했던 인물.

의 영향이 컸다.
1) 한국에서의 활동
이런 분위기속에서 자란 정이형은 19198년 1월 전라남도 장성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이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3․1운동이 일어나고 정이형은 3․1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친형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1921년 7월 장성군 북하면 대악리에 4년제 선룡사립보통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일제 식민통치 당국의 감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일경에 의해 피체된다. 이런 일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고 때마침 형이 사망하자 1922년 10월 27일 의주로 귀환한다. 장례를 치르면서 정이형은 일제의 감시망을 벗어나고 형의 유지를 따르고자 만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한다. 그래서 정이형은 연통제에 참여하여 의주군감으로 활동하고 대한독립단과도 연고가 깊던 김경하를 만나 망명의사를 피력하였다. 김경하는 정이형에게 만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대한통의부 학무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신언갑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써 주었다. 준비를 마친 정이형은 망명길에 오른다.
2) 만주에서의 활동
1922년 11월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넌 뒤 안동현을 거쳐 대한통의부의 활동 근거지인 관전현에 도착하여 신업갑을 찾아갔다. 그의 소개로 대한통의부에 참여하게 되고, 민사부장 이웅해와 교통부장 오동진, 그리고 의용군 사령관 김창환 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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