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사회] 남북분단사

등록일 2003.10.31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이거만 보셔도 남북분단사를 쉽게 이해하실수 있을 겁니당~~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한국과 관련된 조약과 회담 - 카이로, 포츠담, 얄타회담
1)카이로·포츠담회담
2)얄타회담
2. 모스크바 3상회의
3. 신탁과 반탁
1)동아일보의 오보
2)반탁·찬탁으로 나뉜 한반도
3. 좌우합작운동
4. 남북협상

Ⅱ. 결 론

본문내용

▲ 일제의 잔재청산실패와 반탁운동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사실 다른 세력보다는 국내 기반이 취약했던 임시정부가 그토록 법통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데는 한민당(한구민주당)이라는 정치세력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한민당은 무엇 때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주장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었던 것일까?
한민당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미군정과 결합하여 나름대로 정치력을 확보하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친일 협력자라는 시선으로부터 매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건준, 인공 세력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했다. 더욱 기막힌 일은 건준, 인공들을 되려 친일파로 매도하는 적반하장도 서슴치 않으면서 말이다.

일본 총독은 여운형을 통해 친일 정부를 세우려고 시도했다. 여운형은 소위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인공을 창건해서 대중을 속이고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긴 하지만, 이들이 '친일파'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절차 부심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당시 '친일파', '민족반역자'는 한민당의 아킬레스건이었고, 어떤 정치세력이든 '친일파'로 낙인찍히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한민당의 이러한 노선은 해방정국에서 좌익세력의 급속한 확대를 우려하던 미군정의 의도와 적절히 결합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한민당 관계자들은 대부분 군정관리로 등용되었다.
이런 한민당에게 '임시정부지지'는 친일 콤플렉스에 대한 면죄부였으며 바로 그 정통성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경 임시정부야 말로 3·1운동 당시의 법통성을 이어받았고, 연합국으로부터 승인 받았으며, 곳곳에서 독립을 위해 힘써 싸웠기 때문에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며, 건국사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 애국자를 지지하는 자신들도 애국자이며, 감히 이들과 맞서려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과거 때문에 임시정부에 매달려야 했던 한민당에게 반탁운동은 구원의 등불이었다. 다시말해 완전한 독립을 반대해 조선 인민공화국에 대하여 '즉시 해산 명령을 내릴 것'을 주장해온 그들에게는, 인공측에 대해 명분상 우위를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더. 인공을 친일파 집단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자신들 스스로가 애국자라 주장하는 것 보다는, 자신들이야말로 '반소 독립노선'을 걷는 진정한 애국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중에게 훨씬 더 잘 먹혀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및 site
·한국분단사연구, 신복룡, 한울아카데미, 2001
·미군정기 좌우합작에 관한 연구, 이상수, 전북교육대학원, 1996
·한권으로 보는 한국사 100장면, 박은봉, 가람기획, 1993
·근대 민족사와 민족문제, 한국사연구회, 지식산업사, 1995
·자유를 향한 여정, 우리한국사, 김당맥, 푸른역사, 2002
·생각하며 역사읽기-쟁점으로 본 한국사-, 김육훈, 푸른나무, 1996
·http://naver.com/: 지식검색
·http://yahoo.co.kr/: 지식검색
·http://empas.com/: 지식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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