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화통역

등록일 2003.10.30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1,300원

목차

1)수화 통역의 성립과 보급
2)광복 이후의 수화 보급
3)제도적 개입

본문내용

1)수화 통역의 성립과 보급
가)수화통역의 성립
한국에서의 수화통역은 어떤 형태로 언제부터 이루어졌는가는 분명히 알려진바 없다. 한 공시기록(濟生院盲啞部,1938)이 수화통역 관련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916년 7월 28일 부장 오오스까(大塚米藏) 음아자(음아者) 범죄 사실 취조 통사(取調通事)로서 경성 지방법원에 출두함. 당부(當部) 직원 재판소 통사의 시작임.(p.15)
이 기록만으로는 범법 농아인의 국적(한국인 또는 일본인), 교육정도 및 수화 이해도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것이 한국 안에서의 초기의 수화통역에 속한다는 것과 이것이 복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추정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나)초기의 수화 보급
한국 안에서 이루어진 조직적인 수화 보급은 제생원 아본과(啞本科)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수화 강습(1928)」이 그 효시이다.
당초 이 강습회는 맹아협회(1921년 설립) 농아인 회원을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계획되었으나 출석자가 없어 시행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농아동 가정에서의 의사소통의 문제가 특수교육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됨으로써 농학생들의 가족을 그 대상으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그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知覽,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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