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치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3.10.30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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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치무리의 기원
2.『제민요술(齊民要術)』속의 김치무리
3. 우리 나라 고대의 김치무리
4. 일본 고대의 김치무리
5. 고려시대의 김치무리
6. 1600년대의 김치무리
7. 1700년대의 김치무리
8. 조선 중기 이후의 김치무리
9. 김치의 용어
10. 김치의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본문내용
농경의 발달에 의하여 인류는 곡물을 생산하게 되었고, 곡물은 저장성이 있어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나 에너지원인 곡물만으로는 살 수 없으므로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의 섭취가 생리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러나 채소는 곡물과 달라서 저장성이 없으며 채소를 건조하면 본래의 맛을 잃고 영양소의 손실을 가져온다. 따라서 무언가 교묘한 저장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醬, 醋, 향신료 등과 섞어 재우므로서 새로운 맛과 향기를 생성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김치무리이다.
1. 김치무리의 기원
1) 지금부터 약 3000년전의 중국 최초의 시집인 『詩經』에 나오는 노래 중에 菹(채소절임 저)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김치무리를 말하는 것으로, 김치무리에 관한 문헌상의 첫 기록이다.
밭두둑에 외가 열었다.
외를 깎아 菹를 담자.
이것을 조상에 바쳐
壽를 누리고 하늘의 복을 받자.
2) 진(秦)나라(BC 238∼207) 재상인 여불위가 많은 학자들을 모아서 지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의하니 '周文王이 菹를 즐겨 먹었다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주문왕을 존경하는 나머지 모든 행위를 그에 따르기 위하여 콧등을 찌푸려 가면서 菹를 먹어서 삼년 후에 이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菹는 콧등을 찌푸리면서 먹어야 할 정도로 신맛이 센 것임을 알 수 있겠다.
3)『설문해자(說文解字, 후한의 허진)』에 '菹를 신맛의 채소'라 하여 주문왕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리고 '醋에 절인 외가 바로 菹'라고 함.
4) 『석명(釋名, 漢末의 유희)』에는 '菹는 阻(막힐 조)이므로 채소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키면 유산이 생기고 이 유산은 소금과 더불어 채소가 짓무르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 사전의 설명으로 菹채라고 표기되는 김치무리는 채소를 초에 담그는 오늘날의 피클(pickles)과 같은 것과 소금에 의하여 부패를 방지하면서 유산발효를 시켜 채소를 저장하도록 하는 산미가공식품의 두 가지 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