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987년 이후의 한국 사회운동

등록일 2003.10.27 한글 (hwp) | 21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들어가면서
2. 1987년 6월 투쟁 이전까지의 한국 사회운동
3. 1986년 6월투쟁 이후의 한국 사회운동
4. 결론

본문내용

1. 들어가면서
1987년 6월의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은 한국현대사의 전개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다. 이 투쟁은 1961년 5.16 군사쿠테타에 의해 수립된 군부정권을 즉각적으로 퇴진시키지는 못했지만, 군부세력의 퇴진과 정치적 민주화가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임을 입증해 주었다. 6월투쟁에 힘입어 국민의 직접-보통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이 가능해지고, 합법적 정치공간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개정된 헌법 하에서 치러진 1987년 12월의 13대 대선에서는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로 말미암아 여당후보로 나온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으로 군부세력의 집권은 사실상 연장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가 38%라는 낮은 지지율로 당선된 데에서도 드러나다시피, 노태우정권은 집권기간 내내 '정통성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집권세력은 90년 2월 '3당통합'을 단행, 과거에 유신체제를 뒷받침한 김종필세력과 더불어 김영삼세력을 여권진영으로 끌어들였다. 1992년 12월의 14대 대선에서는 여당후보로 나온 김영삼이 당선되었다. 김영삼정권은, 비록 김영삼이 군부세력과 손잡아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 1960년이래 처음으로 수립된 '문민정부'(the civil government)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 정권이었다. 더욱이 집권한 김영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도록 도운 군부세력의 정치개입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정치의 문민화'에 앞장섰다. 1997년 12월 치루어진 15대 대선에서는 김영삼정권의 실정과 한국을 IMF 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한 외환-금융위기의 발생 등에 힘입어 야당후보로 나온 김대중이 당선되었다. 김대중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김영삼정권 하에서 다시 축출된 김종필세력과 손을 잡았었다. 이 점에서 김대중의 당선은 민주세력의 온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로 자처하는 김대중정권의 출범은 1960년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화과정을 한층 더 진척시키는 것이었다. 김대중정권 하에서는 이전에 불법활동으로 탄압 받는 '민주노총'과 '전교조'와 같은 주요 사회단체들의 활동이 합법화되고,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의 폭이 한층 더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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