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상

등록일 2003.10.24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머리말

Ⅱ. 각 사상가들의 논쟁적 대립
ⅰ.주자학절대주의자 송시열 vs 상대주의자 윤증
ⅱ.예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 송시열 vs 허목
∎1차예송
∎2차예송
ⅲ. 變通論 최명길 vs 斥和臣 김상헌
ⅳ. 조선 최고의 경제관료 잠곡 김육

Ⅲ. 맺음말

본문내용

17세기에 이르러 조선은 임란과 호란등의 전란으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진다. 즉 전쟁으로 인해 국토만이 유린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지배이데올로기자체가 흔들리는 시기가 된 것이다. 임란직후 전란중에 의병활동등의 공으로 정인홍을 필두로 정치적으로 집권한 조식, 서경덕계열의 북인세력들은 당시 대다수 사림들에게 이들의 사상이 성리학적 이상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평가 받는다. 즉 정권을 잡은 북인계열의 영수인 남명 조식이 문묘종사에서 배제됨으로써 남명등의 실천적 학문경향이 당대 주류로 자리잡지 못하고 만다. 이러한 가운데 인조반정이 일어나 국외적으로 중립적 실리외교를 표방하고 국내적으로 전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재건국하던 광해군과 북인계열은 서인세력에 의해 실각하게 된다. 이후 정국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서인계열의 사상가들은 흔들리던 조선사회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 소중화주의를 표방하며 조선사회를 더욱 보수화 시키게 된다. 이들 서인계열의 학자,사상가들의 주자성리학에 기반한 의리명분론은 향후 조선사회가 역사에서 사라질때까지 주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는다. 오늘날 송시열을 영수로 하는 이들 서인계열에 대한 평가에 있어 일부학자들은 조선이 세계사적 큰 흐름인 근대화에 있어 실패하게된 원인으로 이들 서인계열 사상가들이 정체적, 보수적인 정치노선을 채택한데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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