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오죽헌을 다녀와서

등록일 2003.10.24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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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항상 보고 있지만 낯설은 율곡이이 선생처럼 가까운곳이면서도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던곳, 오천원 짜리 지폐에 나오는 오죽헌을 오늘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로 인해 방문하게 되었다.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 오죽헌 탐방은 꽤 흥미있는 여행이 될것같았다.
내내 궂은비만 내리던 날들속에 오늘은 왠일인지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 기분까지 좋아졌다.
정문을 들어설때쯤 같이간 친구가 물었다, 너는 왜 오죽헌이 오죽헌이라고 이름붙여 졌는지 알고있느냐고,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자세하게 설명해 주길 까마귀 오자에 대나무 죽자로, 까만 대나무가 자라는곳이라고 일러주었다. 오죽헌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주변 경관도 수려했고 주위를 꽃나무들로 잘 가꾸어 놓아 입구에서 오죽헌까지 가는길에 주변풍경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오죽헌의 정문을 들어서면 시원한 진입로를 지나 자경문(自警門) 앞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 자경문 안쪽이 오죽헌이라 할 수 있다. 자경문을 들어서면 율곡기념관 앞의 제법 넓은 공간이 있고, 자경문 앞에 율곡선생 유적 정화 기념비가 있는데, 그 옆으로 율곡 선생의 사당인 문성사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문성사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신사임당이 율곡 선생의 태몽을 꾸었다는 몽룡실이 있다.
오죽헌 안내요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안내를 해주었던 몽룡실. 그리 넓진 않치만 정갈한 분윅가물씬 풍겨왔다. 이곳이 그 유명한 이율곡이 출생한 곳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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