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고이즈미 (때늦은 개혁이라도)

등록일 2003.10.23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총리가 된 고이즈미, 그러나 그의 지지도는 계속 하락세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가 총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깨고, 2001년 4월 24일 고이즈미가 자민당 총리가 되었다. 계속되는 경제 침체로 인해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이 고이즈미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구조개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경제 역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높은 국민의 지지로 총리가 된 고이즈미의 인기 역시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부치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파벌 정치의 담합에 의해 탄생한 모리 요시로는 역대 수상 중 가장 인기가 없었다. 국민 지지율이 10%를 내려간 자민당에서 모리 전 총리를 내세워서는 2001년 7월 29일에 행해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자민당 젊은 의원들이 모리 총리의 퇴진을 주장했고, 결국 모리 총리가 총리 부임 후 1년만에 사임했다.. 모리의 뒤를 이을 총재 선거 입후보자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가 지지하는 하시모토 유타로와 고노 그룹 지원의 아소 타로, 무파벌의 고이즈미 3명이었다.
일본의 총재 선거는 지방대표 141표에 자민당 중․참의원표 346표를 합친 487표 중 과반수인 244표 이상을 얻은 후보가 총재에 임명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민당의 총재 선거는 파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아무리 국민에게 인기가 있는 고이즈미라고 할지라도 국회의원인 당원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움직여왔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예상이었다.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가 예비선거를 받아들인 이유도 파벌에 기초하면 고이즈이의 표는 모리파, 가토파, 야마자키파, 무당파를 합쳐도 100-110석에 불과하여 과반수 244표까지는 130-140표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 배경과 전망, 2001. 4, 세종연구소, p 6
대부분의 국민들이 최대파벌인 하시모토파의 지지를 받은 하시모토 유타로가 결선투표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고 자료

․ 괴짜 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 오가타 구니히코, 2001. 9, 예지
․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 배경과 전망, 2001. 4, 세종 연구소
․ 일본․일본학, 1995, 최상용 외, 오름
․ 중앙일보, 2001. 4. 6부터 2002. 4. 16까지, 검색어: 고이즈미
․ 러시아 100장면, 이무열, 1998, 가람기획
․ 러시아사, 김학준, 1999, 대한 교과서 주식회사
․ 신 중국사, 존킹페어뱅크, 2000, 까치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