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중훈 회장

등록일 2003.10.21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얼마전 타계한 조중훈 회장의 모든 것 입니다^^

목차

해방되던 해 仁川에서 韓進商事 창업
확실한 ‘신용’으로 국제적 신임 얻어
이미 60년대 말부터 ‘수송외길’ 사업 확장
幸運 기대하기 보다 판단력과 비젼 중요시
눈앞의 이익 겨냥한 문어발식 확장 싫어해
외화획득 통한 성장 바탕으로 ‘민간외교관’ 역할
육영사업 등 사회에 대한 기여에도 큰 관심
미래 내다 본 결단력 대단
사업을 예술이라 믿은 수송업계의 代父이자 거인

본문내용

趙重勳 회장은 1920년 음력 2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기미년 3.1 독립운동 이듬해다. 그 무렵 日帝는 3·1운동으로 표출된 우리의 민족적 저항운동을 무마하고자 소위 文化政治로 전환하고 있던 때였다. 아울러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고 우리나라를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兵站 基地化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가 趙회장의 소년 시절이었다.

방정환, 안창남, 나운영 씨 등이 졸업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소재 미동초등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보를 중퇴한 뒤, 한국해양대학의 전신인 鎭海海員養成所를 수료한 趙회장은 약관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식민지 국가의 청년이 이국 땅에서 어떠한 고초를 겪었을까 하는 것은 누구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일. 한편으로는 造船 기술을 익히며 돈을 벌고 밤에는 독학을 하는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배를 타고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와서 보링공장을 운영하였으나 당시 군수사업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의 기업정비령에 의해 문을 닫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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