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등록일 2003.10.20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들어가며
1. 경복궁의 창건
1) 추정배치안
2) 배치원리와 사상
2. 광화문
3. 근정전
4. 사정전
5. 강녕전
6. 교태전과 아미산
7. 경회루
8. 흠경각
9. 사경전
10. 향원정
11. 명성황후 조난지
12. 자선당과 비현각
마치면서

본문내용

조선왕조의 수도 한성에 건설된 궁궐은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인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등이었다. 한양에 새로운 왕조의 도읍을 정한 직후에 시작된 도성 계획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 문묘, 성균관 등 유교적 정치 이념을 대변할 정치, 제사, 학문의 대표 시설을 도성 안의 중추적 위치에 배치함을 기본으로 삼았다. 신중하게 선택된 도읍지는 외곽이 도성으로 둘러지고 내부는 풍수지리적 명당 자리에 세워진 궁궐을 중심으로 당시 정치, 경제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경복궁은 그래서 도성 내부 북서쪽으로 치우친 백악산 밑, 인왕산 동쪽에 자리잡게 되었으며 종묘와 사직, 관아, 시장 역시 경복궁을 기준으로 자리를 정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4년(1395)에 창건되었다.

1) 추정 배치안
창건 당시 경복궁의 배치 형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바탕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태조실록」4년(1395) 9월 29일의 기사를 보면 창건할 때의 규모와 배치 그리고 각 건물의 기능을 자세히 쓰고 있다.
곧 연침(燕寢), 동소침(東小寢), 서소침(西小寢), 보평청(報平廳) 등 내전(內殿) 건물과 정전, 동서각루(東西角樓), 동서누고(東西樓庫) 등이 행랑으로 둘러싸이거나 천랑(穿廊)으로 연결되어 배치되었고 문은 정전 앞 남행랑에 전문(殿門)을 두고 다시 그 앞쪽에는 오문(午門, 남문)을 배치하였으며 그 양쪽에 월화문(月華門, 서문)과 일화문(日華門, 동문)을 배치하였다.
이상 정전, 편전(보평청), 침전(연침, 동소침, 서소침) 일곽에 대해서는 건물의 규모뿐 아니라 정전 2중 기단(상하충 월대)의 넓이와 높이, 궁전 뜰의 넓이 등도 상술하고 있으며 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추정안이 나왔다.
한편 정전, 편전, 침전으로 구성된 핵심 부분 외의 궐내(闕內) 시설에 대해서는 규모, 위치, 기능에 대한 설명 없이 주방(廚房), 등촉인자방(燈燭引者房), 상의원(尙衣院), 양전 사옹방(兩殿司甕房), 상서사(尙書司), 승지방(承旨房), 내시 다방(內侍茶房) 등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과 경흥부(敬興府), 중추원(中樞院), 삼군부(三軍府) 등 주요 관청만을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는 궁궐 내 전체 건물의 규모가 390여 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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