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소평[鄧小平]- 중국의 2대 국가 주석

등록일 2003.10.15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약력
2. 노력
3. 정책
4. 천안문 사태
5. 업적 및 평가
6. 마치면서

본문내용

1. 약력
1904년 중국의 쓰촨성[四川省] 광안현 협흥향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파리에서 공산주의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그 후 모스크바의 중산(中山)대학에서 공부를 더하고 귀국하여 1927년 광시[廣西]에서 공산당 지하운동에 종사하였다. 1933년에는 반주류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을 지지하고, 장정(長征)에 참여. 항일전 내내 공산당의 팔로군(八路軍)에서 정치위원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1949년 장강(長江) 도하작전과 난징[南京] 점령을 지도하여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수립에 공을 세워서 1952년에 정무원(政務院) 부총리가 되고 그 뒤로 당 중앙위원회 비서장과 정치국 위원을 차례로 역임하게 된다.
1966년 경제발전을 위하여 물질적 보상제도를 채택하고, 엘리트를 양성하자는 실용주의노선을 주장하면서 마오쩌둥과 노선갈등을 빚어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紅衛兵)으로부터 반모주자파(反毛走資派)의 수괴라는 비판을 받고 실각되었다가 1973년 3월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추천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하게 되고 몇 년 후 저우언라이가 죽자 마오쩌둥의 추종자인 4인방(四人幇)에 의하여 다시 권좌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 후 1976년 마오쩌둥이 죽고 화궈펑[華國鋒]이 4인방을 숙청하였으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정국수습이 어려워, 일년 후 예젠잉의 종용으로 등소평이 다시 복직하게 된다.
화궈펑과 5년간의 권력투쟁 끝에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이때부터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과감한 개혁조치들을 단행하게 되는데 그의 집권 후 기업가와 농민의 이윤보장, 지방분권적 경제운영, 엘리트 양성, 외국인투자 허용 등으로 중국경제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1989년 4월 그 유명한 톈안먼[天安門]사건으로 그의 정치적 거취가 불안해 보였으나 위기를 수습하고, 중국 정계의 최고 실권자로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아쉽게도 1997월 2월 19일 등소평은 중국 최고 실권자로서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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