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베트남전쟁

등록일 2003.10.15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A+받았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발표자료임다.
부록으로

목차

Ⅰ. 서론

Ⅱ. 베트남전쟁의 전개
1. 인도차이나 전쟁 : 2차 대전 직후의 인도차이나 반도
2. 베트남전쟁
3.베트남전쟁의 파급효과

Ⅲ. 한국과 베트남전쟁
1. 국군의 파월
2. 경제성장과 군부독재의 합리화 과정

Ⅳ. 고엽제 문제
1. 고엽제
2. 베트남에서 고엽제 사용 현황
3. 고엽제에 대한 인식
4. 고엽제 피해 현황

Ⅴ. 결 론

본문내용

Ⅰ. 서론
베트남이라는 국가와 민족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과 유사한 면이 많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외교 체제하에서 그 민족성 주체성으로 보존해왔으며, 유교적 정서가 국민의식의 기저에 자리 잡은 점, 현대사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통치를 거친 점, 식민통치의 종식 후 이데올로기적 영향으로 남북이 분열된 점 등 놀라울 만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2003년은 32만 명의 파병을 낳게 했던 베트남전쟁에서 마지막 병력이 철수한지 만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를 하고 경제협력관계를 맺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6개월의 파월 기간 동안 우리 장병들은 4,600여명의 전사자와 15,000여명의 전상자를 남기고 베트남전쟁은 끝이 났지만 베트남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그로 인한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있다. 고엽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파월 장병들이 귀국 후 병명도 모르는 피부질환과 신경계질환에 시달려왔으나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가 1992년에야 고엽제 피해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92년 4월부터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는 파월 장병 2,000여명의 신고를 받아 1차로 238명에 대한 국가보훈처에 정밀신체검사를 의뢰하였고, 국가보훈처는 1993. 1. 15일 이 중 12명을 전상자로 판정하여 이들은 정부로부터 ‘고엽제로 인해 발생한 질병’이라는 첫 공식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다른 전·사상자들처럼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게 되었다. 고엽제 후유증환자와 피해자단체의 호소와 여론의 압력으로 정부는 서둘러 고엽제후유증환자에 대한 신고 및 진료, 역학조사 등을 규정한 ‘고엽제후유의증환자 진료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였고, 이 법률안은 1993.2.23 임시국회를 통과하여 이제 고엽제후유증이나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고엽제 피해자의 진료와 역학조사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 자료

최영진, 《동아시아 국제 관계사》, 지식산업사, 1996년
이영희, 《베트남전쟁 : 30년 전재의 전개와 종결》, 두레, 1985
국방부 편찬, 《고엽제후유의증 환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 국방백서, 1998
마이클 매클리어 著, 유경찬 譯, 《베트남 : 10,000일의 전쟁》, 을유문화사, 2002
유인선, 《(새로 쓴)베트남의 역사》, 이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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