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한국교회의 역할

등록일 2003.10.14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400원

목차

제목: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개신교회의 역할
-한국 보수장로교회를 중심으로

로마 카톨릭의 전래
개신교 선교 초기(1884-1900)
독립협회와 기독교인들
선교사들과 정치
조선 멸망기
1900년 전후의 기독교와 정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한말 항일 운동
3 1 운동
1920~30년대
신사참배와 교회
신사참배 반대운동
친일(親日)에 대해
기독교와 제 1 공화국
박정희 정권시대
전두환 정권시대
오늘날에 교회와 정치

본문내용

개신교 선교 초기(1884-1900)
개신교의 한반도 선교는 1884년을 기점으로 한다. 한국에 상주하면서 선교하기 위해 들어온 초기의 개신교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PCA)의 알렌이었다. 알렌에 이어 1885년 언드우드와 미국 감리회의 아펜젤러가 내한했다. 처음 이들이 입국할 때 한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것은 교육과 의료 활동 뿐이었다.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의 개화와 계몽에 기여를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고종(高宗)은 선교사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신뢰를 보내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자유롭게 선교하도록 선뜻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선교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한다는 정부의 공적인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선교활동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며 내세웠다.

19세기 말 한국 기독교인들의 정치·사회적 활동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를 띤다. 하나는 관리들의 부정 부패에 저항하고 서양의 민주주의 제도를 소개함으로써 민중을 계몽하고 사회를 근대화하려는 '반봉건 사회 개혁 운동' 이요, 다른 하나는 한국인들의 민족 의식을 일깨워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려는 '반외세 자주 독립 운동'이다. 반봉건 운동은 주로 부당한 과세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기독교인들의 수가 꽤 되었던 서북 지방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무시못할 정도의 세를 이루어서 서북 지방 군수로 임명된 어떤 관리는 기독교인이 적은 다른 지방으로 임지를 옮겨달라고 떼를 쓰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불의한 관리들에 대한 이러한 저항 운동이 산발적이고 비조직적이었던 것에 비해 독립협회 활동에 가담한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은 비교적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참고 자료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2.
이만열, 한국기독교사 특강, 성경읽기사, 1987.
양낙흥, 개혁주의 사회윤리와 한국장로교회,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4.
이만열, 한국 기독교와 민족의식, 지식산업사, 1991.
한국 기독교사 연구회, 한국 기독교의 역사, 기독교문사, 1998.
민경배, 한국 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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