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등록일 2003.10.09 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세계문화의 사적이해"에서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유용하게 쓰시길 바랍니다...(_ _)

목차

1.전쟁의 배경
-이슬람 세계의 분열
-서유럽 세계의 대변혁
2.전쟁의 원인
3.전쟁의 경과
-제1차 십자군 침략(1096-1099)
-제2차 십자군 침략(1147-1149)
-제3차 십자군 침략(1188-1192)
-제4차 십자군 침략(1202-1204)
-제5차 십자군 침략(1217-1221)
-제6차 십자군 침략(1228-1229)
-제7차 십자군 침략(1248-1254)
-제8차 십자군 침략(1270)
4.전쟁의 결과 및 영향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본문내용

◆ 십자군 전쟁은 성전이었나? ◆

1095년 11월 28일 서프랑크 (프랑스) 나부의 작은 마을 클레르몽에는 각지로부터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교황 우르반 2세가 이곳에서 공의회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예루살렘과 콘스탄티노플의 형제들이 긴급히 호소를 해오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지방으로부터 침입해온 투르크인들이 무력으로 기독교인을 추방하고 약탈을 자행하며, 마을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신성한 교회를 부수고 신앙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 악을 물리치고 그 땅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을 이교도로부터 탈환하려는 십자군 모집이 시작되고 이후 200여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우르반 2세의 연설은 사실 거짓이었다. 투르크인들은 흑해 이북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생활하던 유목민족으로 (중국식 발음으로는 '돌궐') 당시 아랍지역으로 남하해 이슬람 제국과 비진틴을 압박해 왔다. 그리고 이들이 예루살렘까지도 장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작 기독교도의 성지순례를 방해한 적은 없었다. 물론 그 이전에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던 이슬람 제국도 기독교도의 순례를 막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교황이 난데 없이 성지회복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교황의 진짜 속셈은 보다 정치적인 데 있었다. 사실은 클레르몽 공의회 직전에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황제가 교황에게 밀사를 보내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투르크 족이 비잔틴의 앞마당 격인 아나톨리아 지방을 점령함에 따라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마저도 함락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교황으로서는 지난 9세기의 성상파괴령 파동 이래 비잔틴과 결별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은 비잔틴을 교황의 세력권으로 흡수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아민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조르주 타트 저/안정미 역,「십자군 전쟁 :
성전탈환의 시나리오」-시공디스커버리088
김성환,「교실밖 세계사여행」
김정위, 「중동사」
셴켸비치 저/이시철 역, 「십자군의 기사」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