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건축] 비원

등록일 2003.10.09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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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비원은 조선시대의 창덕궁 뒤쪽에 자리잡은 정원으로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본래 이곳은 비원이라 하지 않고 처음 만들어진 조선시대 초기부터 고종 때까지는 후원, 북원 그리고 금원으로 불려졌다. 비원, 북원, 금원 모두 정원을 말하는 말인데, 이 정원이라는 말은 일본인이 붙인 말이라 한다. 그러므로 비원이라는 말은 사실 후원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맞다.
후원은 태종 때 생겼다. 세종은 경복궁에 주로 머물러서 후원에 대한 이야기가 잘 언급되지 않았다. 후원을 확장한 왕은 세조이다. 세조는 후원확장을 위해 그 안에 있던 백성들의 집 141채 정도를 헐었다. 후원이 넓어지면서 왕뿐만 아니라 왕의 가족들까지도 후원에서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연산군 때에는 후원이 난잡한 놀이터로 변하였다. 백성들이 궁 안의 놀이를 못 보게 하기 위해 담을 높게 쌓고 담 주변에 있는 백성들의 집을 헐고, 후원과 인접해있는 성균관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였다. 왕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던 인정하는 걸까?
왕의 놀이를 위해서 죄 없는 백성들만이 피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니 그 시대의 백성들이 측은히 여겨졌다. 배를 띄울 정도의 연못을 팔려고 했던 것으로 봐서 중국의 정원형태를 모방한 것 같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인해 창덕궁이 모두 불타고 후원의 피해도 심했다.

참고 자료

비원(저자:주남철/출판사: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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