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영화비평] 탈구조주의관점에서영화이재수의난

등록일 2003.10.08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600원

목차

1.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2. 백년 전의 핏빛 역사와 작가의 동시대성
3. 작가 - 시스템의 "과잉"이 빚어낸 대중과의 불화
4.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를 살아가는 작가의 니힐리즘 향기
5. 새 즈믄해를 맞이하는 영화 작가(auteur)의 과제들

본문내용

탈근대의 경계는 "작가의 죽음"에 있다. 아무래도 그 죽음의 선봉에는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의 공헌이 컸다. 롤랑 바르트는 [망테이아 Manteia]"지(1968년)에서 "작가의 죽음"을 선언하였고, 미셀 푸코는 [작가란 무엇인가?](1969년)라는 글을 통해 "근대적 주체의 종언"을 고하였다. 우선 그들은 작품과 텍스트를 구분하면서, 작품은 창작자가 수용자에게 단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텍스트는 수용자가 다양하게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이 지지한 텍스트라는 것은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기표와 기의가 서로 일대 일로 만나지 못하고, 끝없이 지연되고, 부유하는 의미의 미끄러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창작자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단지 텍스트라는 언어 구조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재수의 난>(99년)은 다시금 작가주의적 사유와 시선으로 역사와 역사의 행간 사이를 파고든 작품이다. 백년 동안에 걸친 역사의 침묵과 변방이라는 지형학적인 위치로 깊게 파묻혀 있던 제주섬의 민란을, 오늘날 영화라는 이미지로 풍성히 담아내고자 하는 감독의 동시대성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박광수 감독의 동시대성은 백년 전의 핏빛 자국을 근대의 출발과 함께 곪아있던 모순이 한 순간 터져버린 결과이며, 또한 여전히 마감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그 누구도 그들의 역사를 혹은 자신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예민한 촉수는 백년이라는 두터운 시?공간의 더께를 파고들기에는 너무나 힘겨웠던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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