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황남대총에 관해

등록일 2003.10.06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이 레포트제출해서 교수님한테 칭찬받았는데..^^

저 A+받았어요 ^^ 많은 참고있으시길...

목차

없음

본문내용

경주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신라시대 초기의 여러 왕릉들로 추정되는 20여기의 왕릉이 군집되어 있는 경주대릉원에 우리나라 고고학사의 ‘10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고 아직까지 여러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는 황남대총이 있다.
남북길이 120m, 높이 23m로 기이하고 거대한 모습을 자랑하는 이 무덤은 1973년 7월 6일 1만6천의 봉토를 깎음으로써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여기서 기원을 알 수 없는 신기한 유물들과 무덤구조 ,금관이 출토됨으로써 이 무덤에 대한 의혹이 커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이 왕릉에 대한 연구 및 조사는 계속되어져오고 있다. 이 왕릉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학자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이 왕릉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무덤양식이다. 황남대총은 신라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가 깎은 돌로 계단을 쌓은 피라미드식의 구조인 ‘적석총’의 무덤양식을 사용하는데 반해 신라는 무덤의 중심부가 목곽과 적석으로 나뉘는 ‘적석목관분’의 양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황남대총은 이 ‘적석목곽분’의 양식의 구조와 동일하다. 또한 이왕릉은 부곽을 포함한 주요 구조물들이 나무로 만들어진 내부구조에 바닥밑 외곽부분을 돌로 쌓은 뒤 그 위에 엄청난 양의 큰 흙을 쌓은 남분과 북분의 두가지 쌍분의 구조를 띄고있다.
그럼 지금부터 북분과 남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먼저 북분은 1973년 7월에 발굴되었는데 발굴당시 목곽 내에 이중 관이 들어있을뿐 부장물을 넣는 부곽은 따로 있지 않았다. 여러 장신구가 출토되고 그중 금관도 출토되었으며 150m정도의 나이는 추정 할수 없는 남분의 주인보다 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주인은 여러 가지 화려한 장신구와 유골의 모양 무엇보다도 여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부인배”라고 쓰여있는 유물이 출토됨으로 보아 남분의 아내(왕비)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남분에 대해 살펴보면 남분은 1973년 8월에 발굴되었는데 곽의 중앙에는 이중으로 된 관이 놓여 있었으며 주곽의 범위만큼 땅을 약간 파고 큰 돌을 깐 뒤 다시 그 위에 잔 자갈을 깔고 주곽을 지상에 놓았다. 부곽의 지반은 그냥 바닥으로 되어있었다. 이 곳에서는 여러 가지 장신구들과 금동관이 출토되었으며 170m내외의 60세 가량의 남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이 남자임을 확실히 짐작케 하는 유물로써 ‘환두대도’라는 무기가 출토되기도 했다.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이무덤은 어느 한시대의 왕의 무덤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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