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귀족제설과 관료제설
- 최초 등록일
- 2003.10.04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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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본 론
1. 귀족제 사회설과 관료제 사회설의 제기
2. 관료제설
3. 귀족제설
3. 결 론
본문내용
고려를 귀족사회로 보는 시각은 일제시기부터 있었으며, 고려 지배층의 특성에 대한 파악은 1960년대 邊太燮 선생에 의해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그는 고려 전기 귀족사회 운영의 특성을 2품 이상의 재추를 중심으로 하는 문반중심 운영체제로 파악하였고, 무인정변이 일어난 고려 후기에는 문무반의 교차가 이루어지고, 관직 중심의 운영구조가 점차 나타나면서 조선의 양반사회로 이행하여 가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사회계층을 분석했던 李佑成 선생은 고려의 공음전시가 5품 이상 관료에게 지급되어 자손에게 상속되는 토지임을 밝힘으로써 고려 귀족제의 근거를 경제적 면에서 뒷받침하였다. 이처럼 60년대에서 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의 고려 귀족제 연구는 귀족의 특성, 귀족의 세습원리로서의 음서의 중요성 및 그들의 경제기반이 되는 공음전시의 세전등을 밝힘으로써, 고려사회가 귀족제사회였다는 인식도 심화되어 갔다.
고려 귀족제 사회설에 대한 반론은 1972년 朴菖熙 선생이 「고려 명종대 정권의 성격」이라는 제목의 역사학회 원례 발표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고려시대 '관료제'에 대한 고찰」에서 고려사의 제사상(諸史像) 중 '귀족' 또는 '귀족제'적 이해와 규정이 합리적 논증과정을 거친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고려는 광종이 과거제를 시행하여 유능한 과거관료들을 조직적으로 생산확보 함으로써 그들을 골간으로 하는 관료제를 수립하였고, 이는 성종대 이후 더욱 강화되어 갔다고 하였다. 고려의 정치지배세력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과거관료였으며 이들을 주축으로 관료제를 지향했으므로 고려사회는 조선의 양반사회와 유사한, 능력본위로 관직이 부여된 관료제사화 곧 '가산관료제사회'였다고 주장하면서 관료제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참고 자료
1.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편,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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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金毅圭, 『高麗社會의 貴族制說과 官僚制說』, 知識産業社 ,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