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제도] 영국통치제도의 발전

등록일 2003.10.04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왕실
2.의회
3.정당제도
4.수상과 행정부

본문내용

1. 왕실
영국 왕실의 역사에서 우선 주목할 사실은 잉글랜드에서는 국왕이 절대왕정을 확립한 적이 없었다는 것.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한창 절대왕정을 다지고 있을 때, 잉글랜드에서는 오히려 왕권의 위축이 나타남. 왕권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1640년대의 내전으로부터 1688년의 명예혁명에 이르기까지 약 반세기간 계속되었고, 잉글랜드의 왕권은 결국 도전을 물리치는 데 실패. 명예혁명은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를 해결. 이후 정치적 논의와 활동의 중심지가 궁정에서 의회로 영원히 이전되었으며, 정부는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국민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동의가 확실해짐.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왕의 권력이 전적으로 소멸된 것은 아님. 의회에 대한 왕의 통제는 그후에도 계속되었고 왕은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후견제를 행사. 19세기 초 조지 3세(1760-1820)가 정신질환을 일으킬 때까지 군주들은 궁정에서 정치를 주도, 영국은 제한적이나마 여전히 왕국이며 왕정. 19세기에 들어서야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권의 개념이 확실해짐. 그러나 스튜어트 왕조 때 겪은 소요와 그 뒤를 이은 독일 계통의 하노버 왕조때 왕권은 크게 제약 받음.
21세기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왕정은 시대착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대중민주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왕실의 역할이 오히려 강조되었다는 것.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스튜어트와 하노버 왕조에서는 재생되지 않음. 오늘날 왕실은 국민적 통일의 상징. 국왕의 권력은 거의 무에 가깝지만 상징적 의미는 증가. 그리고 영국 왕실이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의도적인 이미지 구축의 결과.
현재 영국국왕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권리가 있다면, 아마 수상의 임명권일 것. 총선에서 어떤 당도 다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여왕은 수상을 임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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