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유학] 유학의 통치이념과 조선시대의 정국운영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정치세력의 동향

등록일 2003.10.04 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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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보다도 유학을 더 신봉하고 공자님을 더 숭상했다고 해서 중국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기독교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보다 기독교를 더 숭앙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을지 모른다. 중국본토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당나라 때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공자님께 올리는 석전제를 아직도 옛날식 그대로 지내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우리나라가 바로 그 나라이다.
(석전제 - 부록에 참고)

유학의 통치이념을 알아보기에 앞서, 유학의 뿌리와 배경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해해보도록 하자.
유학은 공자에서 비롯되어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맹자에게로 그 맥이 이어졌다.
이후 유학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시련을 겪게되지만 한대(漢代)에 이르러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채택되면서 이후 중국 한족 문화의 기본 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후한이 멸망하자 위, 촉, 오 삼국시대가 전개되고, 다시 위나라가 통일하면서 바로 서진시대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위진 남북조 시대부터 현실 도피적인 노장사상이 귀족 사이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당시의 중국인들은 노장사상을 매개로 불교를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불교는 쉽게 사회에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위진 시대 이후로 세습 귀족화된 지식인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인간과 인간을 둘러 싼 자연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인 문제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는 왕조의 교체가 빈번하여 사회의 혼란이 극심하였으며 도교의 청담사상이 유행하고 불교가 융성하였다. 또한 유교적인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던 북방의 여러 국가들은 중국사회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게 되자 불교에 의해 국가적 통치이념의 확립과 통일을 이루고자 하였다. 따라서 불교는 정치, 사회, 경제적 혼란과 아울러 사상적 혼란이 심화되는 시기에 중국사회에서 급격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새로이 중국을 통일한 수(隋)는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불교를 선택하였고, 당唐)나라 대에는 승려를 관직에까지 등용, 불교는 국가종교로서의 색채를 강하게 띄게 된다.
한편 지배집단은 불교가 왕권에 완전히 복고되지 않은 채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대한 위협과 지배이념으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느끼게 되자 이제는 도교와 함께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고려시대에도 불교는 사회통합을 위해 권장되었지만, 지배이념은 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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