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 보림사

등록일 2003.10.03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보림사는...
2. 주요 유물및 건축물

본문내용

1. 보림사는...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지금부터 1천 3백여년전에 창건한 신라시대의 거찰이다. 이곳에 처음 절을 지은 것은보조국사보다 100년 전쯤 사람인 원표대덕(元表大德)으로 원래의 이름은 가지산사였다. 그 뒤 보조국사 체징이 이곳에서 헌안왕의 뜻을 받아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다.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에 무려 800여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보조국사가 입적 후에 헌강왕이 절 이름을 내려주어 보림사가 되
었다. 화엄종 사찰로 출발해 선종사찰로 바뀐 것이다.
미국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있는 "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사적기"는 조선 초 세조 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에 대한 가장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창건설화가 이렇게 적혀있다.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 보림사, 중국 보림사를 거쳐 참선중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용은 다 나가고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때 용꼬리에 맞아 파인 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원래의 못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보림사 주위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청룡리, 청룡이 피를 흘리며 넘어간 피재, 용두산, 용문리, 용소, 녹룡리등인데 창건설화에서 토속신앙과 불교의 대립이 있었음을 유추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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