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불교사] 신라불교사

등록일 2003.10.03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상고기- 신라의 불교 수용과 정착과정
Ⅱ. 중고기의 국가 불교
Ⅲ. 중대의 교학 불교
Ⅳ. 신라 하대의 선종의 도입
*참고문헌*

본문내용

당시,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중국문화에 대한 교류 및 지식과 이해가 적어 불교를 수용하는데 많은 사상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존의 신라의 토착신앙, 즉 무격신앙(巫覡信仰)과의 마찰로 외래의 불교 신앙의 수용이 순조롭지 못하였다. 신라의 토착신앙은 일정한 교의 체계를 갖추지 않은 주술적인 것이었고, 사회적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씨족 공동체 안의 폐쇄적인 사회에서 중앙 집권적인 왕국이 성립되어 갈수록 이러한 무격신앙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으며, 일정한 교의 체계를 갖춘 고등 종교인 불교가 들어오면서 점차 기존의 토착신앙이 지니고 있던 지위를 불교에 넘겨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갈등을 보여주는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차돈의 순교를 들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순교 설화를 《삼국사기》․《해동고승전》․《삼국유사》 및 금석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법흥왕은 당시 불교를 존중하였으나, 기존의 무격신앙을 바탕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군신들의 반대가 두려워 불교의 수용에 있어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진흥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던 이차돈에 의하여 절(흥륜사)을 지을 결심을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이차돈에게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차돈이 당시 신라 토착신앙의 성소라 할 수 있는 천경림에 절을 지으려 하자 기존의 군신들의 강력한 반발을 가져 왔고, 왕은 자신과의 상의도 없이 천경림에 창사를 하려한 이차돈을 왕의 입장에서 교명죄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불교 진흥에 있어 강경파 였던 이차돈은 절을 지을 바에는 아예 토착 신앙의 본거지였던 천경림에 창사를 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보다 강력하게 나타내고 싶어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사 특강>불교 사상과 신앙. 최병헌. 2000. 서울대학교출판부.
<한국사 시민강좌 4>동양 뷸교 사상의 한국불교. 최병헌. 1989. 일조각.
<한국사 8>불교. 신종원. 199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8>삼국의 문화. 최광식. 199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9>불교 철학의 확립. 정병삼. 1998.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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