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임나일본부논쟁사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3.10.02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참고자료는 한국사주요쟁점에서 발제했습니다.
임나일본부문제의 핵심문제만 발제했습니다.

목차

1. 임나일본부설의 성립

2. 기마민족 정복왕조설

3. 일본열도 내 분국설

4. 위왜 자치집단설

5. 백제군사령부설

6. 임나지배설의 축소 및 외교교역설

7. 안라왜신관설의 제기

본문내용

1. 임나일본부설의 성립
(1) 배경 : 19c 후반 메이지 유신이후 정한론이 대두, 『고사기』,『일본서기』에서 신라정벌 거론
(2) 성립과정
① 신라정벌전설을 『일본서기』를 비롯 옛 문헌들과 합쳐 객관적 사실로 정착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한반도 지명연구 → 1910년 한국병합후 임나지방 지배는 당연한 것으로 여김
② 1949년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기존의 문헌연구 종합, 외형적 근거의 남한경영론을 주장
ⅰ.『일본서기』신공황후 섭정49년 서기369년 왜군이 신라를 쳐서 일곱나라를 평정함으로써
임나지배 시작, 전라도 지역을 평정한 후 백제에 조공의 서약
ⅱ.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왜가 391년 백제와 신라등을 깨뜨려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는
기록, 한반도의 패권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전투
ⅲ. 남한경영론은 왜가 결국 4c 중엽에서 6c중엽까지 200년동안 가야지역을 지배함을 의미
(3) 비판 : 6c 이전의『일본서기』는 설화전승을 토대로 위조,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 기사는
탈락된 몇글자로 인해 달리 해석, 또한 왜의 임나지배는 한반도계통의 사서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가야지역에 유물에 일본적 요소가 거의 없음
2. 기마민족 정복왕조설
(1) 배경 : 패전이후 일본에선 『일본서기』의 재평가, 황국사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함께
에가미 나미오는 ‘기마민족 정복왕조설’을 주장
(2) 내용
① 일본 고분시대 초기 3c말 ~ 4c말 까지의 고분에서는 비실용적이고 제사의례적인 유물 출토
일본 고분시대 후기 5c ~ 6c 까지의 고분에서는 실용적이고 전투적인 유물 출토
→ 4c에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남하한 기마민족이 일본농경민족 정복 이후의 변화
②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과정 재구성
ⅰ.10대 왕 숭신천황(BC 97~30)이 진정한 초대천황으로 그의 이름에서 한반도 김해 지방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 그는 변한지역을 다스리던 진왕의 자손으로 4c초 백제와 신라의
압박으로 일본에 정착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여 왜,한 연합왕국을 세움 → 1차 일본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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