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미술] 오르세미술관
- 최초 등록일
- 2003.10.01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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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보시면 알겠지만 흔한 자료처럼 가저다 맞춘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의 오르세 탐방을 근거로 현장느낌그대로를 정직하게 담았습니다. 절대 후회 안하실겁니다 참고로 A+ 받았습니다 ^^*
목차
1. 오르세 미술관의 역사와 특징
(1)기차역에서 미술관으로
(2)오르세 미술관의 특징
Ⅱ. 오르세 미술관의 내부
Ⅲ. 주요 작품 감상
Ⅳ. 오르세와 작품 감상 후기
* 참고 문헌 및 싸이트 *
본문내용
Ⅰ. 오르세 미술관의 역사와 특징
(1)기차역에서 미술관으로
파리의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로 센느강 좌안 지역에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는 아르누보양식 건축물이 바로 오르세 미술관이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계기로 세워진 오르세 역을 개조하여 만든 만든 미술관이다. 파리 시 외곽에는 오스테를리치역이 있었다. 이 역을 쓰고있던 오를레 앙 철도회사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기 직전인 1871년 파리 코뮌 때 화재로 소실된 센느 강변의 오르세궁 부지를 국가로부터 불하 받는다 오르세 역은 부유층 승객과 주위의 경관이나 고급스러운 시가지와의 조화를 고려해 안락하면서도 화려한 외관을 갖추어야 했다
오르세 역 건설 계획은 에밀 베나르, 루시엥 마뉴, 빅토르 랄루등 당시 저명한 세 명의 건축가들에게 의뢰 최종적으로 1878년 로마 대상 수상이자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루가 선정되었다. 랄루는 건물의 철골구조를가리기 위해 절충주의 양식의 화려한 석조물로 외관을 장식하고 ,내부는 스태프로 만든 격자형 이중 천장을 설치했다. 외관의 화려함을 위해 역과 호텔을 연결하여 기차가 들어오는 중앙 홀 양쪽의 철골 박 공을 가렸다. 벨샤르가와 릴가에 걸쳐 있는 이 호텔은 370개와 여러 개의 살롱을 보유한아카데믹한 건물의 정수라 볼 수 있다. 화장 회반죽과 석조물들로 가려진 철골구조는 혀를 내두르게 할만한 대담한 기술이었다. 랄루는 세부적 장식을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의뢰했다. 오르세 역은 2년 남짓 지었고 1900년 7월 14일에 개관되었다.
철도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오르세 역은 1939년에 폐쇄된다.프랑스 철도 공사가 떠난 후 랄루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르세 역은 여러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는 장소로 변해갔다. 예를 들어 1945년에는 송환된 포로들을 맞이하는 수용소로 ,였고, 1962년에는 오손 웰즈의 영화 『심판』의 촬영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역에 19세기 후반기의 예술품들을 보관 전시하는 박물관을 설치하려는 구상은 1973년 프랑스 박물관 국의 청원에 귀를 기울인 퐁피두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오르세 역은 역사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초대형 호텔을 건설하려는 재개발 계획에 의해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세기말`의 타락한 취향을 상징하는 기괴한 건물로 취급받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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