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서삼릉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3.09.29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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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가 힘들게 쓴 레포트입니다. 그리고 빈 공백은 사진 붙일 자리이구여. 사진 필요하신분은 말씀하세요 저번학기에 엄청 많이 찍어두었거든여^^;금 제 레포트가 많은 도움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목차
의령원
효창원
예릉(睿陵)
희릉(禧陵)
감상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의 안내
서삼릉에서 비공개지역인 능 소개
서삼릉에 대한 소개
서삼릉 가는 길
서삼릉의 주변 볼거리
본문내용
결국 국내외(國內外)의 혼란한 정세는 안동 김씨 세도 권력의 종말(終末)을 고하고 마는데, 33세의 나이로 승하한 철종(哲宗) 역시 영혜옹주(永惠翁主) 외에 후사(後嗣)가 없어 다음 대의 국왕을 물색하던 중 풍양조씨(豊陽趙氏) 가문이었던 추존왕(追尊王) 익종(翼宗)의 비인 왕대비(王大妃)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이하응(李昰應)과 손잡고 그의 아들을 즉위시켜 고종(高宗)을 삼아 흥선대원군(興善大院君)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 哲仁王后 金氏 약사(略史) >
철인왕후 김씨는 1837년 안동김씨(安東金氏) 집안인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김문근(金汶根)의 딸로 태어나 철종 2년[18 년]에 왕비(王妃)에 책봉(冊封)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왕비 책봉은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의 권력(權力) 유지(維持)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철인왕후는 철종 승하(昇遐)후 흥선대원군(興善大院君)의 집권(執權) 아래에서 대비(大妃)로 여생을 보내다가 고종(高宗) 15년[1878년] 42세의 나이로 승하해 서삼릉(西三陵) 내 철종의 예릉(睿陵)에 안장(安葬)됩니다.
나와 내 친구도 예릉을 둘러본 후 잔디에 풀썩 주저 않아 경치를 한참 감상하고 마지막 코스인 희릉 쪽으로 향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