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조선 전기의 과전법체제와 수취제도
- 최초 등록일
- 2003.09.26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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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주 상세히 정리해놓은것입니다..
조선에 관한 수취체제의 변천과정을 모두다 정리해봤씁니다.
목차
1. 과전법과 수취제도
2. 과전법체제의 성립과 변천
1) 과전법체제의 성립
2) 과전법의 내용
수조지 분급 규정과 그 추이
⑴ 개인 수조지
⑵ 왕실수조지
⑶ 국가수조지
⑷ 주현수조지
수조지 관리규정
조세에 관한 규정
수조권자와 농민의 관계 규정
3) 과전법체제의 쇠퇴와 직전제 성립
⑴ 급전제의 모순
⑵ 국가의 토지지배권 강화
4) 직전제의 성립과 소멸
직전제의 성립 - 1466년 (세조12)
직전세 관수관급제의 시행 - 1478년 (성종9)
직전법의 쇠퇴와 소멸
3. 과전법체제하의 수취제도
1) 전세제
국초
공법의 시행 - 1444년 (세종조)에 확정
하하연분등제의 관행 - 16세기 중종조
영정법의 실시 - 1634년 (인조12)
2) 공납제
3) 군역
4) 요역
4. 맺음말
본문내용
1. 과전법과 수취제도
▸ 과전법의 핵심은 국가와 왕실 및 양반 관인층을 비롯한 지배기구 및 지배층에 대한 수조지분급제도이다.
▸ 이에 따라 지배계층은 수조권을 부여받아 농민경영에 기생하여 지배계층의 지위를 계속해갈 수 있었다.
▸ 과전법체제 운용의 경제적 지반은 자영농민의 광범한 존재와 이들의 항구적 재생산을 전제로 했다.
▸ 그러나 조선 전기 토지생산력의 발달과 이에 따른 빈부의 격차 등 사회계층의 분화로 자영농민이 점차로 분해되고 지주제가 확대되어 자영농민을 기반으로 한 과전법체제의 붕괴는 필연적이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16세기 직전제의 소멸과 각종 수취제도에서의 대납제 ․ 대립제 성행, 이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인으로 나타났다.
2. 과전법체제의 성립과 변천
1) 과전법체제의 성립
▸ 과전법은 고려 말에 개혁파 사대부들이 사전私田의 폐단을 불식하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1391년(공양왕 3)에 제정한 토지법제가 조선왕조의 기본적인 토지법제로 계승되어 한국역사상 수조권에 입각한 토지지배의 마지막 형태로서 조선 전기 사회․경제운용의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
▸ 고려왕조의 전시과는 국가기관 및 각 직역 신분에 따른 지배계층 개인에 대한 수조지 분급과 이를 매개로 한 국가기관의 운영, 직역의 배치, 그리고 신분유지를 근간으로 하였다. 전시과는 무신집권기에 관인들의 생활기반과 유리되었을 만큼 쇠퇴하였고, 이에 따라 원종조에는 녹봉보충을 위해 관인들에게 새로운 수조지를 분급하는 녹과전祿科田이라는 변칙적인 제도가 운영되기도 하였다.
▸ 고려말 사전의 폐단은 전시과체제의 붕괴에서 비롯되며, 무신정권 이래 특히 원제국 압제하에서 권문세가들의 수조지 집적과 이로 인한 민생의 파탄과 국가재정의 궁핍으로 요약된다.
▸ 1388년 위화도회군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와 개혁파 사대부들(조준 등)은 본격적으로 사전개혁에 착수하여 전국의 토지를 국가수조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수조권을 국가기구․관인 따위 직역자에게 용도와 관등의 높고 낮음에 따라 분급하였다.
참고 자료
한길사 -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