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 베르사유체체

등록일 2003.09.24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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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체제
◑ 파리 강화 회의와 베르사유 체제 : 1919년 1월 전승국 27개국 대표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 강화 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중심 인물은 미국의 윌슨, 영국의 로이드 조지, 프랑스의 클레망소였으며, 그 중에서도 윌슨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민족자결주의』로 널리 알려진 윌슨의 14개조 원칙은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의 식민지 약소국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을 안겨 주었다. 민족 자결의 원칙에 따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소수 민족들은 독립 국가를 세웠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가 독립하고 세르비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 등 남슬라브 인의 거주지와 합쳐 세르보 크로아트 슬로벤 왕국이 되었다. 이는 나중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되었다.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시리아는 프랑스의 위임 통치를,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아라비아 반도의 헤자즈는 독립을 했다.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도록 약속받았다. 한편 윌슨은 패전국 독일에게 너무 가혹한 강화 조건을 제시하면 오히려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독일에 대한 보복을 가볍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입장은 강경했다. 사실 서부 전선의 전투는 거의 대부분 프랑스 영토내에서 이루어져 프랑스의 피해는 실로 막심했다. 독일은 자기 나라 땅에서는 전투를 벌이지 않았던 것이다. 난항을 거듭한 끝에 파리 강화 회의는 6월 28일 베르사유 궁에서 조인식을 갖게 되었다. 독일의 영토와 해외 식민지는 갈갈이 찢겨 승전국에게 넘어갔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한편 윌슨이 14개조 원칙에서 주장한 『대소 국가의 구별 없이 정치적 독립과 영토 보전의 상호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 연맹의 설립』은 이의없이 가결되어 조약의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었다. 1920년 11월,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제1회 국제 연맹 총회가 열렸다. 국제 연맹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국제 평화 기구였지만, 출발부터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주창자인 미국이 상원의 조약 비준 거부로 참가하지 못했으며, 러시아와 패전국이 제외되었다. 그 뒤 패전국의 가입이 허락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불가리아·독일 등이 차례로 가입했다. 1933년 일본과 독일이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1937년에는 이탈리아가 탈퇴, 이들 파시즘 세력은 또 한 차례의 세계 전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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