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한국의 성(문화재)에 관해

등록일 2003.09.22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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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세종 3년에 토성으로 된 도성 부분을 석성으로 개축하면서도 옹성은 더 이상 건설하지 못했다. 그뒤 이 옹성 문제는 서울 도성을 수성하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문제가 되었다. 특히 세조 2년에 서울 도성 보위를 위해 다른 도성의 문 전체에 옹성 건설을 주장한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 같은 사람은 옹성에 대단한 집념을 보여 주었다. 세조 2년에 올린 자신의 상소가 먹혀들지 않자 13년 후 세조의 아들인 예종이 집권하자 다시 상소를 올려 서울 도성문의 옹성 건설을 주장한 것이다. 때를 잘못 만난 상소라고 해야 할까. 예종이 보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요절했으므로 상소문도 도루묵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종 10년 1월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채수(蔡壽)가 숭례문(崇禮門)을 중수(重修)하려고 하는데, 아울러 옹성(甕城)도 쌓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좌승지(左承旨) 김승경(金升卿)은 ꡒ중국(中國)은 비록 역참(驛站)이라도 모두 옹성을 쌓았습니다. 숭례문은 중국 사신이 출입하는 곳이니, 옹성을 쌓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ꡓ 하고 찬성 발언을 하였고, 우부승지(右副承旨) 유순(柳洵)은 ꡒ숭례문(崇禮門)은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옹성(甕城)이 없었으니, 모름지기 쌓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ꡓ라고 반대 발언을 하였다. 이에 성종은 ꡒ우리나라의 민력(民力)이 넉넉하지 못하니, 어찌 한결같이 중국과 같을 수 있겠는가?

참고 자료

손영식(1995). 전통 과학 건축. 대원사. 서울.

김동욱(1989). 수원성. 대원사. 서울.

유봉학(1996). 꿈의 문화 유산 화성. 신구문화사. 서울.

주명덕(1981). 한국의 고건축. 광장.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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